외국인노동자 잇단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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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출국 위기에 몰린 외국인 노동자가 공장에서 목을 매거나 지하철역에서 전동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12일 오전 7시45분쯤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원산리 D엔지니어링 공장에서 방글라데시인 노동자 네팔 비쿠(34)가 호이스트(소형 화물을 들어올리는 장치)에 밧줄을 걸어 목매 숨져 있는 것을 동료 야슈 브로아(30)가 발견했다.

1996년 11월 입국한 비쿠는 체류기간 4년이 넘어 현재 불법 체류 중인 상태로 오는 15일 강제 출국당할 것을 걱정해 왔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공장 사장 강모(61)씨는 "4년 전부터 우리 공장에서 일해오던 비쿠에게 어제 아침 '이젠 더 데리고 있을 수 없게 됐다. 이달치 월급 1백20만원을 줄 테니 나가라'고 했는데 눈물만 흘렸다"며 "한달 전부터 강제 출국 문제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고 말했다.

비쿠는 또 이달 초 한국에 있는 자국인 친구들에게 1천만원을 빌려 방글라데시에 있는 동생 바톤 비쿠(27)를 국내에 데려와 김포시 하성면의 한 공장에 취직시켰으나 돈을 갚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앞서 지난 11일 오후 7시28분쯤 스리랑카 근로자 다라카(31)가 경기도 성남시 신흥2동 지하철 8호선 단대오거리역 승강장에서 달리던 전동차에 뛰어들어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는 1996년 1월 스리랑카에서 군복무 중 탈영, 밀입국해 불법 체류 상태에서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H산업에 근무해 왔으나 국내 체류기간이 4년을 넘겨 강제 출국 위기에 몰리자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라카는 사고 당일 오전 10시쯤 "머리가 아프다"며 회사에서 나갔다고 직장 동료들은 전했다.

동료들은 "최근 고용확인 신고 때 동료 외국인 근로자 세명은 했는데 다라카가 자기만 신고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H산업 대표 金모(44)씨는 "다라카는 매달 집에 70만~80만원을 보내는 착한 젊은이로 일을 성실히 했다"며 "16일부터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강제추방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다라카는 고국에 군인인 아버지와 몸이 아픈 어머니, 초등학교 교사인 누나와 동생 두명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오전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성남시 중앙병원 영안실에는 스리랑카 근로자들이 모여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다라카의 희생을 마지막으로-'라고 적힌 검은색 플래카드를 걸고 울분을 터뜨렸다. 빈소 앞에는 전화카드 수십개와 고국에서 온 편지 두통, 1백만원 남짓한 급여 명세서가 덩그러니 놓여 이국땅에서의 외로운 죽음을 실감케 했다.

경찰은 강제추방 위기에 처한 다라카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탈영으로 처벌까지 받을 것을 걱정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성남.김포=정찬민.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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