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녀와 대화 단절|소외감 호소하는 엄마 많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국영기업체 공무원인 큰딸(30), 간호원 둘째딸(27), 대학생 아들(23)을 두고 평범한 공무원의 아내로 살아온 가정주부 이모씨(56·서울 사당동)는 얼마전 집을 뛰쳐나간 적이 있다.
집을 나간 이유는 결혼을 앞둔 큰딸이 교통도 불편하고 주위환경도 별로 좋기 못한 곳에 15년 전 구입한 낡은 30평짜리 단독주택에 사는 엄마의 무능력을 불평하는 소리가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째딸과 아들도 이에 동조, 아버지와 비슷한 수입을 가진 친구도 엄마가 아파트 등을 사고 팔아 이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등 비교하고 나섰다.
신랑 측에 초라한 집안모습을 보이기 싫었을 딸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키운 결과 이기적이 된 자녀들에 대한 배신감에 참을 수가 없었다.
김모씨(46·서울 대치동)는 재수생 아들을 둔 엄마다.
김씨는 아들이 중학교 들어가던 해에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적으로 아들 뒷바라지에 나섰다.
처음엔 아들도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점차 아들에게 무슨 얘기만 하면 『엄마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 『내가 언제 직장 그만두라고 했느냐』며 반항, 아들을 통제할 수 없었고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식의 잔소리를 듣고 눈치보는 이른바 「자식 시집살이」를 하는 형편이다.
현대의 고도로 발달한 핵가족 사회 안에서 「엄마」는 자녀를 보살피는 역할 외에도 과거에는 남편이나 어른들이 깊이 개입했던 자녀의 가정교육, 교육의 책임까지도 전적으로 떠맡게 된 것이 현실이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사회 속에서 자녀교육 문제처럼 엄마들에게 부담스러운 문제가 없다. 학교공부를 잘하도록 독려해야 하고 특기교육과 과외비 마련, 심각해져 가는 청소년문제와 범죄로부터의 자녀보호 등 요즘 엄마들은 그야말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군분투의 결과로 이씨와 김씨처럼 소외감·배신감을 호소하는 엄마들이 많다. 서울청소년 지도육성회 등 가족관계를 다루는 상담소에는 1주일에 보통 4∼5명씩 자녀와의 갈등을 호소하는 어머니들의 발길이 잇따르고 있다.
태화 기독교 사회복지관 상담실장 강경혜씨는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이 문을 잠그고 엄마와는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엄마를 무시한다」며 자신의 소외감을 호소해 온다』며 이제 부모·자식간의 관계도 사랑·존경·순종·효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한다.「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어머니는 싫어서 반항하고 비판하는데 이는 뭔가 뒤섞이고 확실치 않은 사춘기시대의 특성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추애주씨(연대 여성학 강사)는 『엄마들의 소외 문제는 자기가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기르지 않고 남편·자녀의 보조 역할만 충실히 하다가 남편·자녀의 정서적·지적 성장을 따라잡지 못해 나타나는 것』이라며 『남의 보조자 역할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여성들은 스스로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기르는데 소홀히 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한편 부모와 자녀의 갈등을 크게 자녀의 사춘기(중·고교), 대학생 및 미혼시절, 장성해 결혼한 후 세가지로 나누는 김태연 교수(이대·교육심리학)는 자녀의 발달단계에 따른 심리적 특성을 알아 마음을 튼 대화로 친구관계가 되도록 해야한다고 충고한다. <양선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