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이업종 기술 접목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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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왜 간장색깔은 항상 검을까.』
일본 도치기현에 있는 도키다전자 사장은 지난 87년 7월 어느날 같은 지방의 다카하시(고교) 간장공장을 둘러보다 우연히 이런 우문을 던져보았다.
당연히 간장공장 사장 입에서 『간장이 생긴 역사이래 색깔이 변해본 적은 없다』는 대답이 흘러나왔음은 물론이다.

<일 컬러간장 시발>
다카하시 간장 공장이나 도키다 전자는 도치기현의 중소기업들로 이곳 6개 중소기업들이 구성한 「공동조합 프런티어도치기」의 회원들이었다.
그러나 이 우문은 곧 6개회사의 공동테마로 올려져 역시 회원의 하나인 선파당선 공업 측이 『탈·착색법을 이용하면 색깔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며 『컬러 간장은 인기도 클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 공동연구가 시작됐다.
1년간의 실패 끝에 색깔이 투명해 착색하기 쉬운 저염도 생간장을 활성탄으로 탈색한 뒤 색깔을 넣는 방법을 찾아냈다.
청·적색 등 일곱 가지 색깔의 컬러 간장(상표 이론나)이 탄생한 것이다.
「이론나」는 지난 88년말 시범 판매에서 일반 간장보다 다섯배 비싼 3백엔(1백60cc)에 처음 선보여 시판용 1만5천병이 순식간에 동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모임 89년 첫 태동>
이에 힘입어 이들은 일본·미국·EC에 특허출원을 했으며 자본금 1천만엔을 공동출자, (주)이론나를 설립했다.
이론나는 지금도 일본에서 활발히 진행중인 이업종 교류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고있다.
이업종 교류란 전혀 다른 업종의 중소기업들이 모여 서로 기술정보를 교환하거나 아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융합화」활동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 70년대초 1차 석유파동으로 경영난을 겪던 중소기업들이 동병상련의 심정에서 생겨나기 시작해 정부의 지원으로 활성화, 현재는 7만여 중소기업들이 3천여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89년 12월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 이업종 교류회(회장 안청일·한국 표면화학 공업사 대표)가 생긴 이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 50여개 모임에 7백여 중소기업이 활동중이다.
국내 이업종 교류 모임 중 활동이 가장 활발한 모임의 하나인 간석동 교류회는 매달 첫째 금요일에 모임을 갖고있다.
지난 3일에는 기계·화학·전자 등 다양한 업종의 21개 회원사가 회원인 주물 생산업체 성진주공의 공장을 방문, 둘러본 뒤 각자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업종은 다르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랄 수 있는 회원들이 주물 생산 과정의 문제점·운영상의 개선점 등을 지적한, 말하자면 「전문진단서」로 해당기업으로선 귀중한 기술·품질개선 자료임은 물론이다.
안 회장은 이에 대해 『이 같은 상호기술 교류 외에도 한 업체가 필요한 기계를 다른 전문업체가 참여, 공동 개발하거나 여러 기업이 모여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일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이 모임에서는 라이터 제조업체인 태우 산업이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 기계제작업체인 파모닉스의 도움으로 공장 자동화를 이루는 등 그 동안에 모두 15건의 기술교류 성공사례가 있었다.
특히 지난 3월말에는 파모닉스와 성진주공, 그리고 전자업체인 제3개발이 공동으로 그 동안 전량 수입해 오던 식모기(칫솔대에 솔을 박는 기계)개발에 성공하는 개가를 올렸다.

<정부의 지원 절실>
식모기는 대당 수입가격이 3천2백만원으로 이미 칫솔제조업체인 대왕산업으로부터 13대 주문이 들어오는 등 연간 1백억원의 수입 대체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간석동 교류회는 오는 6월 2억원을 공동출자, 외국 수입기계를 국산화하는 연구·생산회사를 설립키로 하고 추진중이다.
간석동 교류회 외에도 현재활동이 활발한 곳은 서울의 태공회. 성창회, 대전의 대덕 이업종 교류회 등 10여군데가 있다.
그러나 이업종 교류의 자리잡기가 이처럼 순탄한 것만은 아니어서 간석동 교류회도 처음엔 회원사끼리 이해대립으로 어려움도 적지 않았고 중소기업들도 아직 필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중소기업 진흥공단을 통해 올해 60개를 새로 결성할 계획이고 94년까지 모두 2백여개로 늘릴 예정이다.
그러나 업종교류가 활성화돼 기술융합화 단계에 들어가면 연6·5%의 낮은 금리로 최고 3억원까지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자금지원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다.
관 주도에서 벗어나 기업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모임이 활성화돼야 하는 것도 과제다.
중소기업 진흥공단 김건차 기술개발 부장은 『교류회는 회원스스로 중요성을 인식, 노력할 때 성과를 얻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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