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보다 클린턴이 더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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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사망한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은 예상외로 같은 공화당 소속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보다 민주당 소속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더 높게 평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포드의 고향인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그랜드래피즈 프레스'는 "포드 전 대통령이 사후 보도를 전제로 1979년 이후 짬짬이 인터뷰에 응해 왔다"며 자세한 내용을 7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포드 전 대통령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높이 평가받는 데 대해 몹시 못마땅해 했다. 그는 "사람들은 뛰어난 연설가인 레이건이 균형예산이나 미국의 미덕, 공산주의의 나쁜 점 등을 얘기할 때 크게 환호했다"며 "하지만 그의 업적은 그의 말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일지는 모르지만 정부 운영은 가장 잘 모르는 대통령"이라며 "그는 서투른 관리자에 불과했다"고 낮게 평가했다.

포드 전 대통령은 특히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것을 레이건의 공으로 돌리는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포드는 "공산주의 붕괴 요인은 서구 부흥을 가져온 대규모 마셜플랜, 서구 방위를 굳건히 해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설립, 미국이 소련과 동유럽의 인권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길을 터준 75년의 헬싱키 인권협약 등 크게 세 가지"라고 못 박았다.

그는 "레이건 지지자들은 그가 군비를 계속 증강했기 때문에 크렘린이 무너졌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이는 나를 화나게 할 뿐"이라며 "냉전 승리는 레이건이나 공화당의 공이 아니라 전체 미국민 덕분"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이래 가장 화술이 좋은 정치인"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레이건도 말을 잘했지만 클린턴처럼 여러 이슈를 한꺼번에 능숙하게 처리하거나 이곳저곳을 열정적으로 돌아다니지는 못했다"며 "그런 면에서 클린턴이 더 나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클린턴이 업적도 많지만 르윈스키 스캔들처럼 '멍청한' 실수도 저질렀다"며 "내가 보기에 그는 전반적으로 평균적인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했다.

포드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에 대해 대중국 외교, 옛 소련과의 협상, 중동 평화 중재 등을 들어 '가장 외교를 잘한 지도자'로 꼽았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과 북한의 도전에 응전한 것,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해임한 것 등을 들며 '결단력을 갖춘 지도자'로 평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81년 인터뷰에서는 "카터는 재앙 같은 존재이자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힐난했다. 하지만 2년 뒤에는 "국내 정책과 외교 정책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며 "경제는 10점 만점에 2~3점밖에 줄 수 없지만 외교 분야는 7~8점을 줄 만하다"고 후한 점수를 매겼다. 또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카터가 1위로 꼽힌 데 대해서도 "너무 불공평한 측면이 있다"고 옹호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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