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학교수가 할 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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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위와 진압의 극한적 대결은 폭력의 난무와 참사만을 남긴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날이 오늘이다.
2년전 오늘,부산 동의대 시위농성을 진압하러 들어갔던 6명의 경찰이 학생들이 지른 불에 타 숨졌다. 이 끔찍한 소사사건을 계기로 전대협은 폭력시위의 청산을 다짐했고,여야 합의에 따라 화염병방지법이 통과되었다. 폭력시위의 결과가 낳은 참사에 대한 반성이었고 공감대였다.
그러나 그후 어떻게 되었는가. 비록 참가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총장선출 방식과 등록금 동결이라는 학내 문제를 둘러싸고 대학가의 폭력시위는 영일없이 되풀이 되었다. 총장실에 못질을 하고 기물이 파손되었으며 집기가 불에 타고 학생이 교수의 멱살을 잡고 스승의 뺨을 때리는 일로까지 번져가지 않았는가.
교수들 스스로가 교권확립을 주장하고 더 이상의 폭력시위는 묵과할 수 없다고 앞장섰으며 외부세력의 대학내 집회를 거부한다는 전국 총·학장회의의 결과가 발표된 것이 바로 며칠전이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명지대 강군의 참사가 일어났다. 그의 참사를 규탄하는 집회와 시위가 연 나흘째 밤낮으로 일고 있으며 일부 교수들마저 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경찰의 소사와 대학생의 참사를 대비시켜 불행한 죽음을 무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동의대사건이나 명지대사건이 주는 교훈은 폭력의 상승작용이란 끝내 참혹한 주검과 사회적 혼란밖에 없음을 환기시키려는 것이다.
더욱 알 수 없는 일은 대학 현장에서 무분별한 폭력에 강한 염증과 혐오감을 보였던 교수들이 어째서 날로 거세지는 학생들의 집회와 농성장에 참여해서 불길에 기름을 붓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제자의 죽음에 애도의 뜻을 표하고 강경진압을 이끈 정부의 공안통치적 분위기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더구나 교수들은 이런 불행한 죽음이 연이어 터지는데 대해 자책과 반성을 할 때이지 다중에 끼어서 시위학생과 꼭 같은 모습으로 정치적 구호를 외칠 때는 아니라고 본다.
동의대사건으로 경찰이 숨졌을 때 단호하게 학생들의 무분별한 폭력을 나무라고 질책한 용감한 교수가 과연 몇이나 되었던가. 무분별한 폭력시위가 이런 참사를 낳으리라 보고 여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학생들의 자제를 용기있게 요청한 교수가 얼마나 있었던가.
동의대의 2년전 경찰 소사사건이나 명지대 강군의 불행한 참사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경찰이 죽었다고 침묵하고 대학생이 죽었다고 해서 구호를 외칠 일이 아니다.
두 죽음을 함께 슬퍼하며 더 이상 무분별한 폭력시위가 계속되지 않기를 역설하는게 대학을 지키고 사회의 길잡이가 되어야 할 교수들의 본분이고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염병과 최루탄이 교전하는 전투적 시위나 진압방식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17개 대학총장들의 호소는 값진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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