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파괴…위기의 현대문명 살리자|『신 과학 운동』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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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가스에 의한 산업재해와 식수오염 사건 등 이 직접적 생존권 위협으로 현실화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이같은 관심을 반영하듯 학계 내에서는 최근 환경파괴로 비롯된 현대문명의 위기상황을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진단·처방하고자 하는 지적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통상「신과학운동」으로 불리는 이같은 지적 흐름은 기존의 서구적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 최근 국내에서도 활발해진 환경보호 운동의 철학적 배경이 되는 사고방식의 대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지금까지 과학기술 문명을 개척해 온 선봉인 자연과학자, 특히 물리학·생물학 등 첨단과학 이론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는 핵무기개발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아인슈타인과 개발실무 총책을 맡았던 오펀하이머 등 물리학자가 뒤늦게 핵 폭탄의 가공할 파괴력에 죄책감을 느끼고 핵 반대평화 운동에 헌신했던 일화를 연상케 하는 움직임으로 주목된다. 결국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과학적 연구가 엉뚱하게도 인류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이러한 부정적 결과까지도 과학자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에서 신과학운동이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이 과학자들의 윤리적 책임감에서 비롯된 신과학운동은 자연스럽게 현대과학 문명의 부정적 산물인 공해 등 환경오염을 추방하고자 하는 환경 보호운동(녹색 운동)의 사상적 기초가 되고 있다.
신과학 운동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 싹트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 김용준 교수(고려대·화공과)등 몇몇 자연과학자들이 모여 독서모임을 꾸려 나가면서부터. 김 교수 등은 과학의 철학적·사회적 배경과 의미를 알기 위해 과학사상(과학철학) 분야의 원서를 읽고 토론하다 86년「과학사상 연구회」로 정식 발족했다. 연구회는 이후 무크지『과학과 철학』등 관련 연구 서를 펴냈으며, 지난해 11월에는「현대문명과 과학기술」이란 대중 강좌를 여는 등 신과학운동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최근 이같은 관심에서 출발한 연구모임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
연구모임으로 서울대 사회정의 연구 실천 모임 내에 과학기술분과가 만들어져 내부 모임·토론회를 계속해 왔으며 지난 12일에는「환경문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보다 비판적인 소장 연구 모임으로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생 중심의 환경문제 연구팀과 한국 철학연구회의 신과학운동 연구분과 등 이 활동중이다.
일반시민들의 관심도 최근 급속히 제고되면서 신과학 운동 적 철학을 설명하는 출판물들이 출판돼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신과학 운동의 대표적 서구학자인 카프라 저『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범양사 간), 신 과학연구회 편『신과학운동』(범양사 간)은 이미 고전으로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보다 전문적인 학술서와 대중적인 입문서 등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보다 실전적인 차원에서 이미 60년대에 시작된 서구의 녹색운동 연(한 살림 운동·자연의 친구들 등)가 국내에서 활발해진 것도 이같은 사상적 흐름이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음을 반증한다.
신과학운동은 인간을 위해 자연을 무한정 파괴·수탈할 수 있다는 서구적 인간관·자연관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일종의 생명철학이다. 즉 인간의 욕망충족을 위해 자연을 파괴해 온 과학기술이란 잘못된 것이며,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하나의 생명체인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중심 사상에서 자연을 단순한「물질」로,「이용의 대상」으로만 생각해 온 서구적 세계관과 이에 기초해 발전해 온 과학과 문명의 근본개념을「자연과의 공존」개념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나아가 신과학운동은 자연 파괴적인 현대문명·사회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미래문명과 행동규범을 강조한다. 예컨대 과도한 욕구를 적절히 억제하면서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생산방법을 개발해 내는 것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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