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국 → 군 출신 … 선군정치가 출세 코스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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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북한의 파워 그룹은 어떤 코스를 거쳐 권력 심장부에 진입할까. 본지 특별취재팀과 사회연결망 분석업체인 '사이람'은 파워 그룹(486명)의 전체 경력 4028개를 ▶시기 ▶기관 ▶직책으로 나눠 종합 분석했다. 이를 다시 1994년과 2006년의 파워 그룹(각 50명)으로 압축해 그들의 경력 네트워크를 해부했다.

◆"힘센 기관도 변한다"=94년에는 노동당 정치국을 거친 인물이 50명 중 29명이나 됐다. 당 정치국이 출세의 필수 코스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해는 정치국 출신이 8명에 불과했다. 정치국의 권력 크기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정보 당국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93년 이후 사망.숙청.망명 등으로 공석이 많아진 정치국을 재정비하지 않은 데다 정치국 자체가 비서국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군 경력에는 힘이 실리고 있다. 파워 그룹(50명) 중 군 출신은 94년 21명에서 지난해 33명으로 늘어났다. 군 경력을 세분하면 인민무력부 출신 14명, 총참모부 출신 10명, 총정치국 출신 5명, 호위사령부 출신 4명 등이었다. 김 위원장은 선군정치 구호 아래 군 출신을 적극 발탁하는 한편 국방 분야 현지지도 횟수를 2002년 34회(총 192회)에서 지난해 65회(총 104회)로 늘렸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상명하복의 군대식 통치를 강조하면서 군 관련 인사들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72년 설치된 국방위원회(현재 위원장 포함 7명) 출신은 최강 그룹으로 약진했다. 98년 헌법 개정 이후 국방위원회가 실질적인 최고통치기구로 격상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위 경력자는 이 기간 중 6명에서 8명으로 늘었다. 핵심 측근인 전병호 국방위 위원(당 군수공업부장 겸임)은 90년 김 위원장이 국방위 1부위원장 직을 맡을 때부터 호흡을 맞춰왔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권력의 중심이 정치국에서 국방위로 이동함에 따라 국방위는 절대적인 출세 코스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김정일 코스'가 출세의 왕도(王道)=김 위원장은 64년 당 조직지도부 책임지도원을 시작으로 ▶선전선동부 ▶비서국 ▶정치국 등을 거치며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90년대 들어 군 최고사령관, 국방위원장 직에 오르며 권력의 두 축인 당.군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래픽 참조>

전체 경력 4028개를 분석한 결과 김 위원장이 밟은 코스를 거쳤던 인물들이 대부분 '권력의 이너서클'에 편입됐다. 조직지도부.선전선동부 출신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최측근 중 한 명인 이제강 조직지도부 1부부장의 경우 김 위원장과 똑같이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출발해 1부부장까지 올랐다. 그는 80년대 김 위원장이 주도했던 평양 재개발 사업을 함께 추진하면서 신임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도 조직지도부 경력이 13년에 이른다.

김국태 당 비서는 선전선동부 경력이 강점이다. 68년 선전선동부장이 됐던 김국태는 김 위원장과 함께 근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항일 빨치산 시절 김일성 주석의 오른팔이었던 김책 전 부수상의 아들이다. 만경대혁명학원.김일성대학을 졸업한 점도 똑같다.

◆빨치산 출신도 세대교체=김일성 시대에 빨치산 경력은 권력 핵심부로 들어가는 보증수표였다. 94년의 파워 그룹 중 빨치산 출신은 7명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빨치산 출신으로선 조명록 국방위 1부위원장만 남았다. 빨치산 1세대가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빨치산 출신의 자녀 등 '혁명 유자녀'만 입학할 수 있는 만경대혁명학원의 졸업생은 늘고 있다. 94년 10명에서 지난해 14명으로 늘었다. 동국대 김용현(북한학과) 교수는 "빨치산 후손들이 대를 이어 파워 그룹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양수 팀장, 채병건.정용수.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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