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석에서] 독일 '1호선' 팀 우정어린 한국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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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지난 9일 저녁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전용극장인 학전그린 소극장에서는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됐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부터 신세대 젊은이까지 외국인 30여명이 무대로 나와 '아침 이슬'을 독일어로 잔잔하게 불렀다. 통기타 반주에 맞춘 이 소박한 이벤트에 관객들도, 이 노래를 만든 김민기 학전 대표도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지하철 1호선'의 2천회 공연을 축하하며, 또 원작 팀을 한국에 초청해준 것에 감사하며 김대표에게 '아침 이슬'을 헌사한 이들. 바로 독일 그립스 극장 뮤지컬 '1호선(Linie1)'의 배우와 스태프들이다.

'1호선'은 잘 알다시피 '지하철 1호선'의 원작이다. 애인을 찾기 위해 베를린에 온 시골 처녀가 지하철에서 만난 인간 군상을 그린 작품으로 독일에서는 10년 넘게 인기를 끌고 있다. 원작자이자 극장 대표인 폴커 루트비히는 저작권료를 받지 않는 등 '지하철 1호선'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면서 김대표와는 나이와 국가를 초월한 우정을 과시해왔다.

그런 점에서 지난 5일부터 나흘간 문예진흥원 대극장에서 열린 독일 원작 팀의 공연은 의미 깊은 행사였다. 장장 3시간이 넘게 노배우와 젊은 배우들은 열정적인 앙상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원년 멤버인 크리스티앙 파이트(68)와 디트리히 레만(63)은 취객.과부.게이 등 여러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역시 원년 멤버가 주축이 된 라이브 밴드의 연주는 원숙미를 더했다. 우리나라처럼 뮤지컬은 젊은 배우들이 독식하고 중년 배우 몇몇은 사소한 배역으로 나오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현지 공연을 일주일이나 접고 한국에 온 '1호선' 팀은 공연을 마치자마자 짐을 꾸려 독일로 돌아갔다. 이들이 머문 일주일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준 성의와 애정은 오랫 동안 진한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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