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도 간첩" "저 인간 이름 적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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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변호사 ××, 북한 지령받고 국정원장 고소한 놈이야."(보수단체 회원)

"(손가락질하며) 저 인간 인적사항 좀 확보해 주세요."(김승교 변호사)

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일심회 총책 장민호(39)씨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이 열린 28일.

재판 시작 10여 분을 앞두고 보수 성향의 단체 회원들과 장씨 변호인 사이에 격렬한 설전이 벌어졌다. 보수단체 회원 한 명이 일심회 포섭 대상 리스트에 올랐던 김승교 변호사를 가리키며 "저놈도 간첩"이라고 외치자 김 변호사가 법원 직원에게 인적사항을 확보해 달라고 했다. 이에 격분한 뉴라이트청년연합.활빈단 등 보수단체 회원 100여 명은 일제히 방청석에서 일어나 "인적사항 확보해서 어찌할 건데. 간첩이 간첩을 변호하느냐. 죽여 버리겠다"며 고성을 질러댔다. 한 방청객은 김정일 얼굴에 빨간 줄이 그어진 걸개그림을 꺼내 흔들다 법정 경위들에게 압수당했다.

법정 소란이 이어지면서 재판부 입장이 10여 분가량 늦어졌고 법원 직원을 비롯해 검사까지 나서 질서 유지를 호소했다. 법정에 들어온 재판장 김동오 부장판사는 미리 준비한 메모를 꺼내 "지난 재판 때 법정 소란은 유감이다. 피고인에 대해 찬성.반대 의사가 있겠지만 법정에서 표현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법정 불안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이 사건은 공소장이 800쪽이 넘고 장민호 피고인에 대한 검찰 신문만 550항이 넘어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법정 질서 유지보다 심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재판이 시작되자 침묵을 지켰고 민주노동당원 등 장씨 지지자들도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법원 주변에 경찰 병력 3개 중대(300여 명)를 배치하고 방청석 맨 앞줄에 30여 명의 사복 경찰을 앉혀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에 앞서 태극기를 법정에 반입하려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방호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인공기도 아니고 위험물도 아닌데 왜 태극기 반입을 막느냐"며 10여 분간 방호원들과 대치했지만 결국 태극기는 놔두고 입장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법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분통이 터져서 왔다. 여긴 평양이 아니다. 간첩은 북한으로 보내라"고 외쳐대기도 했다.

오후 5시50분쯤에는 태극기를 반입하려 했다는 이유로 제지를 받았던 박모씨가 뒤늦게 법정에 들어와 "간첩은 개과천선하라"며 소리를 지르자 김 부장판사가 박씨를 법대 앞으로 불러냈다. 박씨는 "태극기 때문에 제지당해 재판장의 주의 사항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김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나가고 이 재판에 다시 들어오지 말라"며 퇴장 명령을 내렸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최기식 검사는 신문에 앞서 "30여 일간 조사하면서 장민호 피고인과 정이 많이 들었다. 피고인은 실정법 위반인 줄 알면서도 민족에 대한 열정으로 이런 일을 했다고 한다. 순수한 마음을 지켜 훗날 좋은 열매를 맺길 바란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장씨는 이날 자신은 주체사상이 자주라는 측면에서 참고할 점이 많다고 봤지 신봉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북한 공작원과 토론했지만 지령을 받거나 보고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박성우 기자

*** 바로잡습니다

12월 29일자 10면 '일심회 장민호씨 두 번째 공판' 기사와 함께 게재된 삽화에는 보수단체와 변호인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재판부가 착석해 있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에 나와 있듯이 설전은 재판부 입장 이전에 벌어졌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는 "재판부가 착석해 있는 삽화는 마치 법정 소란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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