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안하는 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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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을 보고 한 소년이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자전거 바퀴좀 보세요.』 깜짝 놀라 그 사람은 자전거를 내려다 본다. 아무 이상도 없다. 이때 소년은 저쪽에서 키득거리며 말한다. 『바퀴가 잘 돌아가고 있지요?』
한 어린이가 슈퍼마킷에 가서 종이쪽지를 내보였다. 엄마가 사오라는 물건들이 적혀있다. 「비둘기 젖(유)」 5백㏄짜리 한통,「송아지 알」 열개…. 그래도 상점주인은 화내지 않는다.
4월 초하루 만우절,서양 사람들은 그런 거짓말을 보고도 그냥 웃고 만다.
만우절의 유래는 분분하다. 정설이 따로 없다. 서양의 구력(율리우스력)으로 정초는 양력 3월25일께부터 4월1일 사이. 춘분도 지나고 봄기운이 무르익을 때,사람들은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열고 밉지 않은 농담으로 웃고 지낸다는 뜻도 있는 것 같다.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에서 벌써 16세기부터 그런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유래야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에까지 그 풍습이 건너와 한때는 소방서에 불났다는 엉뚱한 전화를 거는 악동들도 있었다. 악동이 아니라도 거짓말이 일상어처럼 통하는 세태에 만우절이라고 새삼 거짓말을 보태는 것은 하나도 우습지 않다.
차라리 우리는 4월 초하루만이라도 「거짓말을 하지않는 날」로 지내는 편이 훨씬 마음이 환해 질 것 같다.
특히 위정자들,행정책임을 맡은 사람들을 위해 「만우절」 보다는 「만진절」 같은 날이 1년에 며칠만이라도 있어야겠다.
경제관료들은 아직도 물가를 한자리수로 묶을 수 있다고 장담하고 ,환경당국은 수도물을 마음놓고 마셔도 탈이 없다고 주장한다. 강력범 단속은 이미 「전쟁」까지 선포해 놓고 있다. 수서사건 이후 서울시는 고질적인 민원을 어느날까지 일소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린 일도 있었다.
그야말로 우습지도 않은 거짓말들이다. 이젠 어느 위정자가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것은 평소 거짓말쟁이가 받는 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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