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한 이중외교 유감/이재학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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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화추 중국 외교차관이 지난달 31일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하던 모습은 중국의 2중적인 대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유차관은 이날 낮 12시50분쯤 일본항공 951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미리 와 있던 중국 외교부와 무역대표부 직원 및 우리 외무부의 김정기 아주국장등으로부터 영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온 중국 외교부 관리로는 최고위급인사이며,우리의 유엔가입신청을 앞두고 중국의 거부권행사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인 만큼 내외기자들이 몰려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차관은 그러나 귀빈실에서 그를 기디리던 기자들과의 회견을 피해 「도망치듯」 숙소로 가버렸다.
기자들과 함께 그를 기다렸던 중국 외교부 관리들은 물론 의전과 관례를 익히 아는 유차관 역시 기자들이 그와의 회견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영접인사들의 안내를 「핑계」로 입국장과 공항청사밖을 연결하는 귀빈실의 통로를 이용,정작 귀빈실에는 들르지 않았다.
유차관,아니 중국이 우리 기자들과의 회견을 피하는 심사를 모르는 바 아니다.
경제적 필요에 의해 한국과 사실상의 교류는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공개승인할 수 없고,유엔 직속기구의 서울총회 개최는 인정하지만 한국의 유엔가입은 지지할 수 없다는 그들 정책의 이율배반을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랜 우방 북한을 의식하자니 APEC(아테각료회의) 가입과 차기 ESCAP 총회유지에 우리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의 감정을 자극할지도 모르는 미묘한 문제앞에서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중국 대표단이 서울에 머무는 동안 한국기자들과의 회견엔 응할 수 없고 외신기자들과 함께라면 응할 수 있다고 주최측에 말하고 있다는 얘기이고 보면 중극측의 심사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무래도 중국의 이런 태도는 대국외교의 모습이 아니다.
중국이 언제까지 어정쩡하게 대 한반도 2중외교를 지속할 것인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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