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에너지 공룡기업 가스프롬 "벨로루시 가스망 넘겨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세계 최대의 가스회사로 유럽과 옛 소련권 국가들에 대한 가스 공급을 주도하고 있는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이 거침없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외국 기업들이 추진해 오던 러시아 국내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들을 되찾아 오는가 하면 외국의 가스 공급망과 판매망도 장악해 가고 있다. 생산은 물론 운송.판매망까지 통제하는 '공룡 에너지 기업'의 지위를 굳히려는 의도로 보인다.

◆ 벨로루시에 "가스망 넘겨라"=리아노보스티 통신 등 러시아 언론은 "옛 소련권 국가인 벨로루시와 가스 공급가 협상을 벌이고 있는 가스프롬이 가스값 인상폭을 낮춰주는 대신 이 나라 가스망 지분의 절반 이상을 넘기라고 요구했다"고 25일 보도했다. 세르게이 쿠프리야노프 가스프롬 대변인은 이날 "벨로루시가 국영 가스 수송망의 지분 50% 이상을 양도하면 가스프롬은 내년도 가스 공급가를 1000㎥당 현재의 47달러에서 80달러로 소폭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벨로루시가 이를 수용치 않으면 200달러까지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가스프롬은 지난주 반러 성향의 그루지야에 대한 내년도 가스 공급가를 110달러에서 235달러로 인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벨로루시 국내 가스 공급망과 이 나라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은 국영 '벨트란스가스'가 소유하고 있다. 가스프롬의 요구는 벨트란스가스 지분 50%를 넘기라는 것이다. 가스프롬은 오래전부터 벨트란스가스와 지분 매입 협상을 벌여왔으나 지분가 평가에서 이견을 보여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국내 가스망을 러시아 측의 요구대로 싼값에 넘기기도 억울하고, 러시아가 요구한 가스 가격을 지불하기도 어려운 벨로루시는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졌다.

◆ 코빅타 가스전에도 야심=지난주 영국계 로열 더치 셸이 추진하던 사할린 대륙붕 개발 프로젝트 사할린-2의 지분 50% 이상을 확보하며 사할린 개발 사업의 주도권을 장악한 가스프롬은 시베리아 코빅타 가스전 개발 사업에 대한 공략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코빅타 가스전 개발 사업은 영국.러시아 합작기업 BP-TNK가 중국과 한국으로의 가스 수출을 염두에 두고 수년째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2일 "BP-TNK가 수주 내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러시아 당국의 사업 계약 이행 심사를 앞두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당국이 계약 이행 지연을 이유로 사업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업 계약에 따르면 BP-TNK는 올해 말까지 90억㎥의 가스를 생산해야 하지만 이를 이행하기는 불가능한 상태다. BP-TNK가 사업권을 잃을 경우 가스프롬이 코빅타 사업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당국이 이를 노려 BP-TNK에 대한 압력을 높일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유철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