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옐친 전면전 임박/모스크바 군중시위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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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신얻은 옐친 「최후일전」불사/고르비,보수파와 제휴 불가피
연방정부 당국의 시위금지조치를 무시한채 50만명에서 1백만명의 군중을 동원,보리스 옐친에 대한 지지와 개혁파의 힘을 과시하겠다던 개혁파그룹의 장담은 5만명의 군중을 동원하는 것으로 끝났다.
또한 3주동안의 시위금지령과 함께 수만명의 무장경찰과 내무군을 동원,시위를 분쇄하겠다던 연방정부(고르바초프)의 다짐은 이를 무시한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옐친지지 시위대에 의해 무색해졌다.
당초 「유혈충돌」의 가능성을 높인채 긴장감을 불러왔던 28일의 사태는 다행히 유혈사태라는 비극은 보수파·개혁파 양측의 자제로 회피했지만 소련 정국의 앞날에는 더 큰 혼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예고해주고 있다.
즉 입장에 따라 『공포의 벽을 넘어섰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예상보다 훨씬 적은 인원이 참가,연방정부의 권위가 섰다』고 강변할 수도 있게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의 상황은 그동안 보수강경파에 의해 진행되어 왔던 엘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에 대한 불신임안이 상정되지도 못했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대통령령으로 명령한 시위금지령의 무효와 모스크바시에 배치된 보안병력의 철수를 요구한 개혁파의 요구가 5백32대 2백86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다는 점에서 개혁파의 승리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대부분 서방관측통들의 견해다.
옐친이 개막연설에서 『우리에게 힘이 있다면 그것을 과시해야 한다』고 의원들에게 했던 호소가 이날의 표결 및 진압경찰의 위압과 당국의 명령을 무시하고 거리로 쏟아져나온 지지시위대들의 열기에 의해 뒷받침됐다는 것이다.
반면 옐친의 측근인 ▲겐나디 필신 러시아공화국 부총리의 사임 ▲아르톰 타라소프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위원에 대한 KGB의 조사 및 기소 ▲옐친의 경호원들에 대한 연방검찰당국의 조사와 중간조사 발표 결과 이들이 첸첸마피아그룹과 연관이 있다는 보수파 언론의 보도 등으로 기세를 올렸던 보수파들은 옐친에 대한 불신임안을 꺼내지도 못해 패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관측통들은 따라서 이러한 분위기와 보수파가 과반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공화국 의회에서 보여진 이날의 표결결과는 옐친을 충분히 고무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시위군중들이 내건 『고르바초프는 퇴진하라』는 구호처럼 『평화로운 시위를 막기 위한 군대의 동원은 이미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연방정부에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 조차도 「광기는 그만」이라는 제목으로 『군을 불러온 조치는 인민들에 대한 두려움과 인민들과 대화할 능력,의향 등이 없음을 극명히 드러낸 것』이라고 혹평할 정도다.
관측통들은 따라서 이번의 사태에서 자신감을 얻은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직선제를 최고회의에서 조만간 통과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이 아닌 직선제 대통령으로 취임,간선으로 뽑힌 연방의 지도자 고르바초프와 최후의 일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반면 이번 사태후 고르바초프의 입지는 점점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결국 여론에서 패퇴하면서도 연방의 유지를 위해서는 군과 KGB·공산당 등 전통적인 세력과 제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소련의 앞날은 개인적인 감정의 골이 깊어진 두 대립되는 지도자의 정면 충돌 위험이 점점 증가하는 혼미스런 상황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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