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가스값 인상 땐 수입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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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러시아의 천연가스 가격 인상 정책이 주변국과 마찰을 부르고 있다. 세계 최대 가스회사인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은 최근 아제르바이잔에 공급하는 가스 가격을 1000㎥당 110달러에서 내년부터 235달러로 두 배 이상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23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러시아가 가스 공급 가격을 인상하면 러시아로부터 가스 수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역공을 취하고 나섰다.

그는 또 "러시아와의 가스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아제르바이잔의 러시아에 대한 석유 수출을 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24일 보도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석유 자원은 풍부하지만 천연가스는 소요량의 절반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이 최소한의 손실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으며, 상업적 협박에 굴복하는 나라가 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석유와 가스의 문제는 상업과 에너지의 틀 안에서 논의돼야지 정치 무기화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비슷한 조건의 가격 인상 압박을 받아왔던 그루지야는 22일 이미 가스프롬의 압력에 굴복했다. 내년에 1000㎥당 235달러에 11억㎥의 천연가스를 수입하기로 계약한 것이다. 그루지야도 처음엔 가스프롬의 가격 인상 제안에 강력 반발했다.

그루지야는 "러시아가 옛 소련 치하에 있던 공화국들이 친서방 정책을 펴고 있는 데 대한 보복으로 에너지 가격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러시아가 제시한 가격의 수용 여부를 놓고 고민해 왔다. 하지만 대체 수입원을 찾을 수 없자 항복하고 말았다.

벨로루시와 러시아의 가격 협상에서는 러시아가 한발 물러선 상태다. 러시아는 당초 벨로루시에 내년도 가스 공급 가격을 1000㎥당 현재의 47달러에서 200달러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가 러시아와 가장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벨로루시가 "러시아는 마지막 동맹국을 잃을 것"이라며 반발하자 가격을 130~140달러로 대폭 낮춰줬다.

이 같은 대폭적인 가스 가격 인상에 대해 러시아가 친미 성향을 보이는 옛 소련 형제국에 대해 응징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가스프롬은 과거 형제국에 적용해 오던 우호적인 가격을 국제 가격 수준으로 조정하는 조치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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