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억 적자 5년 만에 흑자로 전환 빚더미 회사 살린 구원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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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죽다 살아났다'는 말은 지난 5년간 현대종합상사의 경험에 딱 맞다. 2000년 40조원에 달한 매출이 2003년 1조3000억원으로 3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3년간 누적 적자는 6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면서 자본금을 다 까먹었다. 정주영 명예회장 별세를 전후해 불어닥친 현대그룹의 위기로 금융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으면서 옛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수출 창구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망하면 책상과 전화기밖에 남지 않는다는 종합상사. 회사가 문닫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2004년 4월 채권단은 현대차 미주 사장과 기아차 부사장을 지낸 전명헌(64.사진) 사장을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그가 맨 먼저 한 건 땅에 떨어진 임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이미 임원 40%, 직원 20%의 대규모 인원 감축으로 임직원들이 불안해했다.

"물이 99도에선 끓지 않지만 1도만 높여 주면 끓지 않느냐"는 '100도론'을 강조하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회사에 일찍 출근해 직접 사무실 문을 열쇠로 따고 오전 7시 임원회의를 주재했다. 올라온 서류 결재를 이튿날로 미루지 않는 속도 경영에 몸을 실었다. 채권단을 설득해 동종 업계 수준으로 임직원 처우를 개선하고 승진 인사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자 지난해부터 회사 영업이 본격 흑자로 돌아섰다. 조선과 자원개발 사업이 선순환 구조에 접어든 것이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2004년 상사 업계 처음으로 중국 칭다오 조선소를 인수했다. 베트남과 중동 등지 자원개발 사업에 힘을 쏟았다. 2003년 말 848%에 달한 부채비율은 이듬해 200%로 줄었다. 자본 잠식에서 벗어나면서 한때 365원이던 주가가 최근 2만2000원대까지 회복됐다.

전 사장은 "조선과 자원개발에 진력해 3년 뒤엔 순익 1000억원을 내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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