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는…] 주민소환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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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치과정에 주민참여를 확대하고 비리 정치인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묻는 주민소환 조례제정 운동이 전국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특히 광주의 경우 25개 시민단체가 서명운동에 앞장 서 현재까지 1만2천여명이 서명했다. 거리서명 때는 한 번에 1천명 가까운 시민이 참가한 적도 있었다. 시청과 각 구청의 공무원 6백69명이 한꺼번에 서명한 날도 있었으니 정치개혁을 바라는 시민의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소환제는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직권 남용.직무유기 등의 사유로 신뢰를 상실했을 때 주민이 투표를 통해 해직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 국회에선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광주 시민단체들이 시(市) 조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그처럼 무관심한 국회 입법을 시 차원에서 먼저 촉구해 보자는 뜻도 있다. 광주의 시민단체들은 일정수의 선거인들이 연서로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지방자치법(제13조 3)에 따라 20세 이상 시민 1만8천명의 서명을 목표로 뛰고 있는 것이다.

정치발전을 위해 주민소환제는 주민투표제와 함께 꼭 필요해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정되고 있는 제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주민소환제는 건국 헌법에서 인정되다가 5.16 후 삭제된 뒤 지금까지 무관심 속에 방치돼 왔다. 주민투표법의 경우도 1994년에 여야가 제정을 합의해 놓고 9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주민소환제가 정치적 목적에 남용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제도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최소한 선거인의 10%가 서명해야 소환 요구가 성립되고 그후 다시 주민투표를 실시해 소환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소환이 정치적 반대자에 의해 악용될 소지는 많지 않다.

주민소환 조례를 제정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 또한 법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지방자치법 제15조를 엄격히 적용하면 지방의회는 법령에 의해 명시적 위임이 있어야만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초 청주시의회가 정보공개 조례를 의결했을 때 청주시장이 위법이라며 소(訴)를 제기하자 대법원은 동 조례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며 합법으로 판결했다. 즉, 지방자치법 제15조 내용 중 '법령의 범위 안에서'를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로 유연하게 해석한 것이다.

주민소환제는 하루빨리 제도로 도입돼야 한다. 현재 각종 비리나 선거법 위반으로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단체장이 전국적으로 57명에 이르고 있다. 재판이나 수사를 받고 있는 시.도지사도 3명이나 된다. 심지어 부인이 승진을 대가로 뇌물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았어도 버젓이 자리를 지키는 단체장도 있다. 이들은 1심에서 실형이 선고돼도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법적 절차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임하지 않을 것이며 그 결과 행정 파행은 수년간 지속될 것이다. 이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의 몫으로 돌아옴은 물론이다.

현재 광주뿐만 아니라 전북 부안군과 경기 구리시도 주민소환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분권운동본부도 주민소환제의 도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시.군 단위의 조례 제정이 과연 국회 입법으로까지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앞서 말한 정보공개 제도는 청주시의회의 조례 제정 후 국회에서 법령이 제정되었다. 일본에서도 환경정화.정보공개 등에서 지방 조례가 입법을 유도한 사례가 많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의 원천은 국민의 동의다. 약속을 깨고 신뢰를 상실한 정치인에 대해 책임을 묻는 주민소환제야말로 국민의 기본권이다.

지병문 전남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