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역사:
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
스티븐 밀러 지음
진성록 옮김
부글북스, 413쪽,
1만8000원
지은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18세기 영국인들이다. 그들은 커피하우스와 클럽에서 대화의 기술을 갈고 닦으면서 세계를 끌어가는 문화 국력을 길렀다. 이는 영국이 산업과 경제, 군사력은 물론 문화 면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며 나라의 품격을 높인 원동력이라는 주장이다.
프랑스 살롱의 영국판인 이 대화의 장에서 사람들은 격식을 따지지 않고 거리낌없이 대화를 나눴다. 진행은 신사적으로 이뤄졌으며, 무엇보다 유쾌한 농담과 다양하고 알찬 대화 속에 모두가 즐거웠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는 "대학에 다닌 적도 없는 일개 기계공이던 내가 클럽에 다니면서 즐거운 대화를 통해 처음으로 문학과 종교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지은이는 대서양 건너 미국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삶의 품격을 높이는 것보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일에 사로 잡혀 대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작가 몽테뉴가 "대화는 가르침과 연습을 한꺼번에 제공한다"고 예찬했듯이 대화는 단순하게 말과 의견이 오가고 그치는 게 게 아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물에 대한 식견의 깊이와 풍미를 더해주는 문명의 원천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엇박자 말싸움에 이은 분노 표출이다. 플루타르크는 "포도주(를 곁들인 대화)는 웃음과 농담과 노래를 낳지만, 분노의 결과는 쓰디쓴 원한뿐이다"라는 말로 이를 경계했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이 되면서 서로 엇갈리는 독백만 한다. 말꼬리를 잡히거나 남에게 비판적인 사람으로 비치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에서란 게 지은이의 해석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이 말을 할 줄 안다고 모두가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지은이는 공손함과 경청, 그리고 솔직함과 유머를 대화 촉진제로 처방했다. 귀담아 들어야할 사람이 참으로 많은 세상이다.
사족으로 온고지신 한 자락.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대화로 유명했지만, 스파르타는 반대로 과묵하기 이를 데 없었다. 'laconic(간결한, 간명한,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이란 단어는 스파르타를 둘러싸고 있는 라코니아라는 지명에서 유래했을 정도다. 그런 스파르타를 20세기 들어 나치 같은 전체주의 집단이 정치적 안정을 이유로 찬양했다. 이렇듯 대화는 민주주의의 친구이고 전체주의의 적이다.
채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