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 지휘과 등 한 학급에 15명씩|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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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모스크바에 있는 소련음악의 산실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찾아가며 제일 먼저『슬라브 행진곡』『안단테 칸타빌레』『백조의 호수』등 너무도 익숙한 명곡들을 불현듯 떠오르게 하는 차이코프스키 동상과 만나게 된다. 러시아 음악의 아카데미즘을 확립한 작곡가요, 피아니 스트이며 지휘자이기도 한 안튼 루빈슈타인이 l866년에 설립했다는 이 음악원은 고풍스런 분위기 탓인지 현대인의 번잡스런 일상과 전혀 동떨어진 별천지처럼 느껴지는 음악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어디선가 들려 오는 합창소리를 좇아 어둑한 복도를 이리저리 돌아가 보니 합창 지휘과 5학년의 지휘수업이 한창이다. 졸업반인 5학년생의 진지한「몸놀림」과 표정에 따라 40여명의 동급생 및 후배들이 이루는 화음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수준 급 합창단의 리허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소련 음악 중에서도 합창은 매우 강하고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다.』 합창 지휘과 보리스 테블린 주임교수는『교향악단 지휘자나 피아니스트가 합창도 지휘하는 서구와는 달리 1923년 세계 최초로 합창 지휘과를 만든 소련에서는 합창지휘가 완전히 독립된 전문분야』라고 설명한다.
소련의 정상급 합창지휘자로 손꼽히는 테블린 교수에 따르면 이 5년 제 음악원에는 합창지휘과 외에도 작곡과·피아노과·현악과·성악과·관악과·지휘과 등 이 있는데 학과별로 년 신입생을 15명 가량씩 뽑는다. 입학을 위해 음악이론과 전공과목별 실기시험을 치르며 경쟁률은 평균 5대1정도로 피아노과의 경쟁률이 특히 높은 편. 학생들은 1주일이면 1회에 2시간씩 3회의 개인레슨에다 1회의 마스터클래스(그룹레슨)에 참가하고 수업이 없더라도 6백여 개의 연습 실 중 각자 배정 받은 연습 실에서 5∼6시간씩 연습한다. 개인 레슨 비도 따로 내지 않는 등 완전한 무료교육으로 오히려 매달 장학금이 나온다. 재학생의 과반수가 이 음악원에서 멀지 않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졸업할 때까지 발레공연 반주라든가 오페라의 합창 등 각종 공연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도록 해 무대경험을 쌓는다. 졸업시험을 대신하는 공개 졸업 연주회가 열리는 곳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개최장소로도 유명한 1천7백 석 규모의 차이코프스키 홀. 이와 함께 최근 준공된 7백 석 짜리 라흐마니노프 홀도 매우 아름답고 음향상태가 빼어나 음악원생들 뿐 아니라 일반음악인들로부터도 널리 사랑 받는 연주 장 이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이 음악원 출신들은 국가적으로 취업이 보장돼 있었으나 개방정책과 함께 이제 각자 진로를 개척해야 하므로 졸업반 학생들이 몹시 긴장하고 있다.
이 음악원의 교수는 공채로 뽑는다. 석사이상이라야 하며 대부분이 음악원 출신. 각 교수들의 수업시간은 연간 7백 시간 정도로 교수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 가운데 하나가 지나치게 많은 수업부담이다.
한편 이 음악원은 정규과정 의에도 5세 이상의 음악영재들을 위한 예비과정을 두어 이 음악꿈나무들이 일반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음악원에 정식 입학할 때까지 피아노·바이올린·플루트 등 일부악기는 일찍부터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같은 예비과정 말고도 모스크바시내 구마다 2∼3개 씩 있는 음악학교를 거쳐 음악원에 입학하는 예도 흔하다.
지휘과 보리스 라슈코프 교수는『미국·키프로스·베트남·불가리아·일본 등 세계각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포함해 이 음악원 재학생 수는 약 9백 명』이라면서 김일진·손혜연 등 현재 북한에서 명성을 떨치는 3명의 지휘자도 자신이 직접 가르쳤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또『한국 음악 도들이 재능 있고 매우 열심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국유학생들도 지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제야 전문 음악교육을 위한 음악원을 세워야겠다며 부산스러운 한국에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테블린 교수는『1세기가 넘는 전통 속에서 한명 한 명이 각분야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만한 선배 교수진들에 의한 고도의 전문적 교육덕분에 이 음악원은 레닌그라드의 림스키 코르사코프 음악원과 더불어 소련 음악의 양대 산맥을 이루면서 라흐마니노프·아슈케나지·키타옌코·클라이네프 등 세계적 음악가들을 배출해 왔다」며 교수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모스크바=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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