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집세 5% 규제의 이상과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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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열린우리당 부동산대책특위가 주택 전.월세 계약기간을 3년으로 늘리고, 세입자가 바뀌어도 임대료를 연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고치겠다고 한다. 또 이를 강제하기 위해 주택임대계약 내용을 시.군.구청에 등록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얼핏 힘없는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이들의 주거 안정성을 높이는 온정이 넘치는 정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善意)에서 비롯된 정책이라도 그것이 시장원리에 반할 경우 '시장의 복수'를 부른다. 시장의 복수는 정작 보호하려던 그 무주택 서민들의 부담을 늘리고, 이들을 거리에 내쫓는 결과로 나타난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도 전.월세는 2년간 연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돼 있지만, 세입자가 바뀌면 그 이상 올릴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를 강제로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택임대시장의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새로운 임대료 규제가 시작되기 전에 집주인들은 서둘러 임대료를 올리려 할 것이다. 그것도 3년간 올리지 못할 것에 대비해 한꺼번에 최대한 올릴 것이다. 그러면 시장가격에 맞춰 집세를 올려주려던 세입자의 부담이 훨씬 커진다. 자칫하면 멀쩡하게 잘 있던 세입자도 거리로 나앉게 된다. 임대료가 폭등하고, 전.월세 매물은 줄어든다. 그야말로 전.월세 대란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식의 실패는 이미 경험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89년 말 주택임대기간을 2년으로 늘린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상기해 보라. 2년치 집세가 한꺼번에 오르는 바람에 온 나라가 전.월세 파동에 휩싸이지 않았던가. 행정관서에서 이의신청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때는 이미 전.월세 대란이 벌어진 다음이다.

자고로 정부가 시장의 역할을 온전히 떠안지 않는 한 가격 규제정책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정부가 임대주택을 모두 책임질 수 없는 현실에서 임대료 규제로는 전.월세값을 잡을 수도 없을뿐더러 고단한 세입자들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