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7가] '스캇 보라스의 난(亂)'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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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도 어김없이 '난(亂)'이 일어났습니다.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난입니다. 애너하임에 있는 자신의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계산기를 두들기며 은인자중하던 보라스는 자유계약선수(FA) 등록 마감을 이틀 앞둔 9일 자신의 고객 J.D 드류로 하여금 전격 FA를 선언케 했습니다. 불과 두 달전까지만 해도 "LA가 너무 좋다. 다저스에 계속 남겠다"고 공언했던 드류의 말만 철썩같이 믿고 있다가 뜬금없이 기습을 당한 LA 다저스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습니다(드류는 폴 디포데스타 전 단장과 5년간 5500만 달러 계약을 하면서 "만약 LA에서 생활이 우리 가족에게 맞지 않는다면 2년 후엔 FA를 선언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었는데 이것이 사단이 나고만 것입니다).

역시 보라스다운 '도박'입니다. 3년간 물경 3300만 달러의 보장된 거액을 헌 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새로운 딜을 찾아나설 수 있는 사람은 지구촌에서 그 이름 앞에 늘 '초특급(super)'과 '탐욕스러운(greedy)'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라스의 도박은 용의주도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올 FA시장에서 드류만한 외야수와 좌타자가 없다는 사실을 꿰뚫었습니다. 여기에 원소속팀과의 계약 시한이 없어지고 메이저리그의 수익 증가로 돈이 넘쳐나 충분히 승부수를 띄울만하다고 봤습니다. 보라스는 이같은 시장의 변화를 설명하며 신실한 '크리스찬' 드류를 설득하고 '변심'을 이끌어냈습니다.

보라스는 도박만하지 않았습니다. 전사의 모습도 에누리없이 보여줬습니다. 다저스가 팔꿈치와 어깨 부상으로 2년간 허송한 에릭 가니에를 내쳐버리자 앙갚음한 측면도 다분합니다. 다저스는 1년을 기다린 가니에가 올시즌도 재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자 얼마 전 1200만 달러의 내년 옵션을 미련없이 거둬들였습니다.

몸이 재산인 선수들에게 이런 보라스의 모습은 결코 탐욕스럽기만 한 샤일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인'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작은' 다윗입니다. '봐라 팀을 위해 1년에 70경기 이상을 밤낮없이 봉사한 결과가 이것이다. 그래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비즈니스에는 비즈니스로 맞서야하는 것이다.'

이제 공은 또다시 넘어왔습니다. 탐욕과 전사 이 '두 얼굴의 투수'가 던진 공을 구단주란 타자들이 어떻게 쳐내느냐는 문제입니다. 연례 행사가 돼버린 '보라스의 난'에 또다시 헛스윙을 할 것이냐 아니면 홈런은 아니더라도 클린 히트 정도는 아아니 빗맞은 안타라도 날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또다시 싱거울 듯합니다. 그의 용의주도한 변화구를 때려낼 타자보다는 받아줄 포수가 너무 많을 것같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주전 포수는 물론 백업 포수와도 사인 교환을 다 끝내놓고 작업에 들어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보라스가 아닐테니까요.

고전경제학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시장이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상 최악의 공황을 겪고난 뒤 수정의 수정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보라스란 너무도 '명백한 손'이 쥐락펴락하는 판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구단주들이 한 두해도 아니고 일개 변호사 출신한테 휘둘리다니…. 거 참 아이러니한 메이저리그의 경제학입니다.

미주중앙일보 구자겸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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