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자|박청수<원불교 강남교당 교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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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오랜만에 찾아온 석이 엄마의 머리 모양은 매우 별나 보였다. 머리카락마다 곱슬거려 마치 흑인들의 머리카락을 연상케 했다. 원래 모양내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던 그녀인지라 사유를 물어 보았다. 잠시 멋쩍은 미소를 지은 석이 엄마는 먹고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석이엄마는 위암수술 후 항암 치료 후유증으로 탈모증세가 생겼다. 머리숱이 적은 자신의 모습이 환자처럼 보이는지 주위 사람들이 일을 시키려 하지 않아 미장원에 가 머리숱이 많아 보이는 파마를 부탁했더란다. 그랬더니 이런 모양이 됐다며 들떠 보이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석이엄마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집을 찾아다니면서 하루하루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남의 집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항상 즐겁고 명랑했다. 자신의 하루 품삯을 받을 때도 거저 주는 돈처럼 감사해 했다. 그러던 그녀가 소 화가 잘 안 된다며 소화제를 자주 복용하곤 하더니 어느 날 위암 진단이 내려졌다. 뜻밖의 병명에 그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평소 그녀의 삶의 태도에 큰 감동을 받고 있던 이웃들이 구명(?)운동을 벌여 석이엄마는 수술도 받을 수 있었고 얼마간의 휴양 비까지 마련됐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6개월도 채 못돼 서부터 일을 하려고 애썼다.
한 동안 뜸했던 그간의 소식을 묻는 나에게 『여자들 살 빼는데(에어로빅) 있잖아요. 거기서 평소 일을 했었는데 어느 날은 눈을 떠보니까 병원이었어요. 마포 걸레질하던 기억밖에 안 나는데…아마 일하다 졸도했었나 봐요.』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석이 엄마는 그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씩 웃는다.
요즈음은 밤마다 전신에 마비증세가 오고 혈 변을 보기 시작한다고 했다. 이제는 아무래도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며칠 전에는 돈이나 한번 실컷 써 보려고 시장엘 나갔더란다. 그런데 그 시장바닥에는 엄동설한에 다리가 없는 불구의 몸을 비닐방석에 앉힌 채 전신으로 몸을 움직이며 구걸하는 사람이 있더라는 것이다. 너무 가엾은 생각이 들어「실컷 써 보려고 들고 나갔던 돈(3만원)」을 송두리째 그 사람에게 건네주면서 호강에 겨워 돈이나 써 보려고 시장에 나온 자신을 책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에 비하면 걸어다닐 수 있는 다리도 있고, 또 따뜻한 방안에서 나온 자신의 처지가 너무 행복하더라는 얘기였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비리·부정·의혹이 속출해 보통사람들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석이 엄마처럼 열심히 일하고 매사에 감사하며 자기만 못한 이웃에게 동정심을 베풀며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 갸륵한 이웃이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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