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창해-에너지 기업 탈바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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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2000년 전북 전주에 있는 서호주정을 인수한 보해주정 임성우(53) 회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업의 앞날을 낙관할 수 없어서다. 소주 판매량이 크게 늘지 않는데다 소주의 알콜 도수가 갈수록 낮아져 주정 사업의 전망이 밝지 않았다. 고구마.카사바 등 전분이 섞인 곡물을 발효시켜 만드는 게 주정(에탄올)이다. 국내 에탄올 생산량의 93%가 소주 원료로 사용된다.

또 전주로 공장을 통합하기로 해 두 회사의 인력을 어떻게 다 활용할 것인지도 난제였다. 보해주정과 서호주정에 각각 80명의 인력이 있었지만 공장을 합치고 시설을 개량하면 공장을 돌리는데 60명이면 충분했다.그러면 100명을 내 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생산품목을 바꾸거나 새로운 시장을 찾지 않는 한 이 두 가지 문제를 풀기 어려웠다. 임 회장은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해법을 찾기로 했다. '주정=술'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니 새로운 시장이 보였다. 에탄올을 자동차용 대체 연료로 쓰자는 생각을 했다. 대체 에너지 사업이란 새 진로를 찾은 임 회장은 바로 에탄올 플랜트 건설 및 기술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창해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주정공장 두 개를 합쳐 세운 창해에탄올의 경영 실적은 크게 좋아졌다. 원가의 65%를 차지하는 원료비를 크게 줄이고 절반도 안 되는 인원으로 공장을 돌리니 이익규모가 커졌다. 지난해 570억원의 매출에 58억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노사분규 걱정도 덜었다. 인수 및 합병 과정에서 한 명도 해고하지 않는 것을 보고 노조가 스스로 해산했다. 설립 초기 창해에탄올에 설비를 공급하고 시설을 관리해주는 역할에 머물던 창해엔지니어링은 에탄올 생산효율을 크게 높이는 '감압법'이란 공정을 최근 개발했고 이 공정 적용된 플랜트를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3년 몽골에 에탄올 생산 설비를 처음 수출한 데 이어 내년엔 베트남과 캄보디아.인도네시아 등에도 설비를 공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에탄올을 자동차 연료로 쓰이게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국내 에탄용 생산량이 연간 3억ℓ에 불과한데다 그나마 소주 원료로 쓰이는 것을 빼면 3000만ℓ도 남지 않는다. 그런 수준으론 가솔린연료를 대체할수 없었다.국내에서 자동차 연료로 쓰이는 가솔린은 연간 88억ℓ에 달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원료가 되는 카사바를 재배할 넓은 땅이 필요했다. 창해는 3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지난해 2월 남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 정부와 20년간 필요한 만큼의 땅을 무상으로 임대하는 계약을 했다. 현재 3만㏊(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34배)의 땅에서 카사바가 자라고 있다. 창해그룹 채원영 기획조정실장(사진)은 "에탄올을 자동차 연료로 쓰면 지구 온난화 방지는 물론 에너지 안보 등 여러 면에서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휘발유에 5%만 섞어 써도 국내 휴경 농지를 100% 활용하고 연간 5000억원이 넘는 농가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브라질은 70년대 1차 오일쇼크 때부터 에탄올을 휘발유와 섞어 쓰고 있었다. 에탄올 사용량이 오히려 휘발유보다 많다. 전세계에서 생산된 에탄올의 70%도 이미 연료로 사용되고 있다.

나현철 기자

◆창해=보해 창업주인 임광행 회장(2002년 작고)의 둘째 아들인 임성우 회장이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회사다. 창해에탄올.창해 엔지니어링이 주력 회사다. 곡물 및 설비 수출입 회사인 창해인터내셔널 등을 포함해 5개 계열사가 있다. 국내에선 주정사업에 치중하고 있으나 에탄올 생산설비 해외수출과 에탄올의 에너지 사업에 그룹의 명운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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