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돈 더미 … 너희가 이 분노를 아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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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아침 신문을 본 독자들은 제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방 한쪽을 그득 채운 돈다발 더미 사진 때문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빌라를 금고 삼아 보관하는 현실 앞에 우리는 허탈감을 넘어 분노까지 인다.

권력과의 음흉한 뒷거래에 쓰인 돈들이 사무실.차 트렁크.안방.베란다를 가리지 않고 넘쳐난다. 그것도 한 번에 적어야 수천만원이고, 보통 수백억원대를 넘나드는 엄청난 떼돈이다. 현찰을 가득 넣었을 때 007가방은 1억원, 골프백은 1억2천만원, 사과상자와 골프채 가방은 2억원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다.

불법 정치자금을 수사하는 검찰이 승용차에 현금 40억원을 싣고 운행할 수 있는가를 현장검증할 정도다. 회사돈을 부정하게 빼돌려 개인자금화하는 일부 기업경영인과 이권을 손에 쥔 정치인들의 음습한 거래가 잇따라 판친 탓이다.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세상이 발전하는 만큼 수법은 더 악랄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 세계 12위라는 경제대국의 공당 사무실이 현금보관소로 쓰인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 제 집이 없는 서민들이 40%나 되는데도 사람은 살지 않고 악취 나는 돈만 쌓아 놓는 집이 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한 신용불량자가 3백50만명을 헤아리는데 장롱.서재.화장대 서랍을 열기만 하면 돈과 상품권이 쏟아져 나오는 '요술 가구'를 가진 세무관리가 존재하는 아이러니.

온갖 곳에서 돈 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불법이 판을 치고 있고, 부정한 돈이 그만큼 널려있다는 증거다. 열심히 땀 흘린 대가로 번 돈이나,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모은 돈은 신성하다. 반면, 손쉽게 돈을 벌어 요리조리 세금을 피해가며 모은 돈은 악의 근원이 된다. 집 없는 서민을 울리는 불법 투기를 엄단하고, 기업 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해 검은 돈의 탄생을 막는 데 정부는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기업가.정치가.공무원들에게 우리는 묻는다. 서민들이 돈다발 사진을 보며 들끓는 분노를 알기나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