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수입하자" "안된다" 팽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최근 노동부가 외국인 광원 수입 검토 방침을 밝히면서 그동안 잠잠하던 해외 인력 수입 문제가 또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사 합의를 전제로 한 노동부의 광원 수입 방침은 관계 당사자인 광산노련이 이미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고 노총·전노협 등 노동계가 한결같이 반발, 5일 경제 장관 간담회의 결과에 상관없이 외국 광원 수입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비해 제조·건설업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해외 인력 수입을 다시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심각한 인력난을 겪어온 이들 업체들은 단순·저임의 해외 인력 수입을 계속 주장해왔으나 주무 부서인 노동부의 「극소수의 전문·기능 인력 외엔 절대 수입 불가」 방침에 막혀 본격 거론을 못했었다.
계속된 인력난에도 아무런 인력 수급 대책도 없이 이대로 방치할 경우 지난해보다 더욱 심각한 인력난을 겪게될 것이라는 것이 이들 업계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업계 현실과 노동부·노동계 입장을 정리해 본다.
◇업계 현실=2백만 가구 주택 건설로 호경기를 만난 건설 업계는 사람이 없어 공기를 늦춰야할 형편이다.
중소건설업자 김모씨 (48)는 『2백만 가구 주택 건설로 경기는 좋아졌지만 사람을 못 구해 애를 먹는다』며 『일당도 1만5천∼2만원에서 4만∼6만원으로 급등했지만 인부가 없어 공기를 맞출지 의문』이라고 했다.
중소제조업체들도 외국으로부터 생산 주문을 받아놓고도 인력 부족으로 수출 생산품을 소화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아예 일부 업체는 생산 주문 받기를 기피하고 있다.
제조업체 중에서도 인력난이 가장 심각한 곳은 전자·석유 업계.
섬유 업계는 기능 인력의 평균 재직 기간이 일본의 절반 수준인 3∼5년에 불과하고 그나마 최근에는 제조업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인력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89년에 비해 고용 인력이 22%나 줄어 주문량마저 소화하기 어려운 형편 이어서 조업을 단축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2천40개. 섬유업체들이 몰려 있는 대구 지역 공업 단지는 지난 한햇동안 1만여명의 근로자들이 이직, 대부분 섬유 업체들이 설치한 직기의 30∼40%를 놀리고 있다.
전자 업체들도 필요 인원의 30%나 인원이 부족, 정상 조업이 어려운 형편이다.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도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베트남에 있는 한국계 2세나 중국 교포들의 수입을 원하고 있다.
◇노동부 입장=이번 외국 인력 수입 검토는 광원으로 한정하자는 방침이다.
이것도 무조건 수입이 아니라 ▲노사간 완전 합의 ▲외국 광원 수입에 따른 우리 광원들의 손해 방지 대책 ▲외국인 광원들이 계약 만료 후 전원 본국으로 철수하는 제도적 장치 등이 마련된 후에만 광원 수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노동부는 따라서 제조·건설업 등 일반 산업의 해외 인력 수입은 계속 불허한다는 확고한 방침이다.
최병렬 장관은 『석탄 산업의 인력난이 심각해 이대로 가면 2∼3년 내에 석탄 공사 산하 몇개 탄광만 제외하고 모두 폐광돼 수만명의 광원이 실직할 위기에 있다』면서『 근로자들이 작업 강도가 높고 산재 위험이 큰 광원 취업을 근본적으로 기피하는 현실에서 인력 수급조절 정책만으로는 광원 인력난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광원 수입 방안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노동계 입장=노동부의 광원 수입 검토 방침에 대해 광산 노련을 비롯한 한국노총과 전노협 등 노동계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광산노련 (위원장 김동철)은 지난달 28일 성명을 내 『노동부가 노동력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정책을 강구하지 않은 채 외국 광원의 수입을 거론하는 것은 편의주의 행정』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전노협도 『광산업을 비롯한 제조업의 인력난은 저임금·장시간 노동·나쁜 근로 환경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 『정부는 인력 수입 대신 근로 조건 개선을 통해 서비스업 쪽으로 진출해 있는 비생산적 노동력을 광산업과 제조업 등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산노련 관계자는 『정부의 인력 수입 검토 방침은 광산 업계의 인력난 해소를 위한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당국이 사양화하고 있는 광산 업계에 과감한 정책 지원을 베풀어 임금이나 근로 조건을 향상시킨다면 많은 노동자들을 광산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순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