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성공한 리더는 카리스마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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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 저술가 앤드루 로버츠가 쓴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20세기 최대 비극을 통해 서로 만난 윈스턴 처칠(1874~1965)과 아돌프 히틀러(1889~1945)의 정치활동 등을 통해 리더십의 비결을 캐고 있다.

두 지도자의 위기관리 능력과 자기관리 능력, 웅변술, 카리스마, 국민과의 관계, 인사관리, 참모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태도 등이 비교된다. 대부분의 항목에서 두 지도자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이를 종합해 저자는 처칠을 영감을 주는 리더십의 대가로, 히틀러를 카리스마가 강한 리더십의 대표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카리스마와 리더십의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리더십이나 카리스마라는 표현이 흔히 선(善)의 개념으로 통하는데, 그것들은 절대 선악의 개념이 아니다. 로버츠에 따르면, 카리스마는 '내가 전지전능한 것처럼 보이도록 꾸미는'일종의 속임수다.

히틀러의 카리스마는 그가 상대방을 뚫어져라 응시할 때 그의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신비함에서 나왔다. 히틀러의 툭 튀어 나온 눈동자에 압도돼 오금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 눈길은 최면효과까지 보였다.

하지만 처칠에게는 이런 카리스마가 전혀 없었다. 공개 석상에서 눈물을 비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성공적인 리더로는 단연 처칠이 꼽힌다. 어떻게 보면 성공적인 리더십에는 카리스마가 오히려 방해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처칠만이 아니라 에이브러햄 링컨.아이젠하워.해리 트루먼에게서도 히틀러와 같은 카리스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리더십에 특별히 요구되는 자질은 없으며 카리스마와는 더더욱 관계가 없다"던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만으로는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리더십 그 자체가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하는 목적이 무엇이냐다. 이 잣대라면, 영토 확장.유대인 학살에 광적으로 매달리던 히틀러와 민주주의 수호에 나섰던 처칠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갈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처칠의 리더십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리더들은 어떤 점을 배워야 할까. 상층부 지도층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집단의 성격과 크기만 다를 뿐, 우리 모두는 어떤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거기에 어울리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번역 소개하는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먼저 처칠이 과업과 목표에 접근하는 방식을 눈여겨 볼만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은 논리를 앞세우기보다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는 연설로 전쟁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는 못할지라도 패배주의의 확산을 막을 줄 알았다. 40년대 영국 국민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자신감과 사기였다는 사실을 잘 간파한 것이다.

또 처칠은 지도자의 자리를 특권으로 보지 않고 책임으로 보았다. 그 때문에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비난의 화살을 받아들이는 데 이골이 나 있었다고 한다. 그 덕에 처칠의 주변에는 유능한 인재가 많았다.

그러나 히틀러는 달랐다. 그는 장관과 부하 직원들 간에 경쟁심을 부추겼다. 그래서 참모들 사이에 팀플레이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히틀러의 입장에서는 적대적인 파벌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맡음으로써 손쉽게 권위를 확보할 수 있어 좋았다.

처칠에게도 한가지 흠이 있었으니, 그것은 떠나야 할 때를 놓친 실수였다.

마지막으로 지도자에게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시대를 만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평화로운 룩셈부르크에서는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기 어렵다"는 리더십 전문가 존 아데어의 말로 저자 로버츠는 시간과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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