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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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6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시내 승리광장에 모인 4000여 명의 시위대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민주주의 탄압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대는 ‘경찰국가 반대’ ‘푸틴 없는 러시아’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모두가 헌법 수호에 나서자” “우리에겐 다른 러시아가 필요하다”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모스크바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16일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벌어졌다. 시위대는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적 정책과 민주주의 탄압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내 행진을 벌이려다 이를 봉쇄하는 경찰과 충돌했다. 이날 시위는 2008년 대선을 앞두고 푸틴 정부가 정권 연장에 유리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고, 야당과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벌어졌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반대하는 사람들의 행진'을 기치로 내건 이날 시위는 크렘린궁(대통령궁)에서 멀지 않은 모스크바 시내 중심의 승리광장에서 벌어졌다. 인테르팍스 통신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시위에는 약 4000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단체인 '연합시민전선' '시민민주동맹' 등과 좌파 성향 단체 '붉은청년 전위대' 등이 시위를 주도했다.

유력한 야당 대선 후보로 점쳐지는 미하일 카시야노프(시민민주동맹 지도자) 전 총리는 "15개월 뒤(2008년 3월) 정치권력이 바뀔 것"이라며 "내년에는 모두가 우리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고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우리의 목표를 달성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전 체스 세계 챔피언으로 야당 성향의 정치단체 연합시민전선을 이끌고 있는 카리 카스파로프는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는 사실 자체가 성공"이라며 "우리는 저항하고 있으며 이는 정부 당국이 우리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시위대는 '경찰국가 반대' '푸틴 없는 러시아'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에겐 다른 러시아가 필요하다" "선거를 돌려달라" "모두가 헌법 수호에 일어서자"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 현장엔 8000여 명의 경찰과 내무군.대테러진압부대가 배치돼 시위대의 가두 진출을 차단했다.

◆시위 배경은=푸틴 대통령은 "3기 연임을 위해 헌법을 개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주위에선 70% 이상의 국민 지지를 받고 있는 그가 어떤 식으로든 정권 재창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푸틴이 국민의 지지를 이유로 헌법 개정에 나설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의 3기 연임을 금지하고 있다. 야당은 "개헌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04년 말 89개 지방 정부 수장들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던 제도를 없애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의회 선거도 지역구를 없애고 정당명부에 따른 비례대표제로만 의원을 선출하도록 선거법을 바꿨다. 2007년 총선과 2008년 대선에 앞서 중앙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지방과 의회를 길들이려는 크렘린의 전략으로 해석된다.

푸틴 정부는 야당 정치지도자와 시민단체.자유언론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푸틴 정권을 비판해 오던 여기자 안나 폴리트콥스카야가 10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 뒤 정부의 언론 탄압에 대한 비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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