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님(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여러분! 우리들의 가장 큰 원수는 대체 누구입니까. 소련? 미국? 아닙니다. 그럼 일본? 남들은 그럽니다. 모두들 그럽니다. 일본이 우리의 가장 큰 원수라고….』
그 순간 어디서 『중지,연설중지!』하는 양철 긁는 목소리가 들렸다. 일제가 패망하기 불과 2,3년전 만해 한용운은 서울 한복판에서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고 있었다. 임석 일경이 가만히 그 말을 듣고만 있을리 없었다. 만해는 그러나 태연히 연설을 계속했다.
『…우리의 원수는 일본이 아닙니다. 소련도,미국도 아닙니다. 우리들 자신,우리들의 게으름이 가장 큰 원수입니다.』
기미년 독립선언서의 공약3장을 집필하고,그 자신이 서명자였던 만해는 거사후 감옥에서도 「옥중투쟁 3대원칙」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첫째,변호사를 대지 말 것. 둘째,사식을 취하지 말 것. 셋째,보석을 요구하지 말 것.
옳고 참된 일을 했으면 자신이 스스로 당당히 말하고 행동할 것이지,그밖의 일은 구차하고 비굴하다는 신조였다. 하루는 옥중에 소문이 굴러들어 왔다. 민족대표들은 전원이 극형선고를 받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주위가 술렁거렸다. 이때 만해는 감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이 빌어먹을 놈들아! 그래 독립만세를 부르고 감옥에 들어와 살아나갈 궁리를 한다는 말이냐.』
만년에 만해는 서울 성북동에 심우장이라는 옥호를 붙인 조그만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 이 집은 굳이 남향을 마다하고 북향이었다. 총독부쪽은 바라보기도 싫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그 북향집에서 만해는 한 겨울에도 장작불을 지피지 않고 지냈다. 온 민족이 감옥살이나 다름없는 일제의 고초를 겪고 지내는데 혼자만 등 따뜻하게 살 수 있는냐는 생각이었다.
『…아아,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민족 지도자이자 시인이며 승려였던 만해는 『님의 침묵』속에서도 님의 숨결소리를 듣고 있었다. 민족의 소리,조국의 소리였다. 그는 그 님을 위해 평생을 두리번거림 없이 독한 마음으로 곧게만 살았다. 기미년 3월의 만세를 생각하며 문화부는 3월을 바로 그 「만해 한용운의 달」로 기리게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