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서 모셔온 조련사 '한국인의 잠재력'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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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금메달이 굳어져 가자 스탠드 맨 아래쪽에서 경기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창던지기 코치 에사 우트리아이넨(53)이 눈물을 흘렸다. 핀란드에서 온 우트리아이넨 코치를 육상인들은 그냥 '에사'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13일(한국시간) 도하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인 칼리파 스타디움. 애제자 박재명(26.태백시청)이 남자 창던지기에서 79m30cm를 던져 금메달을 따내자 에사는 제자의 등을 어루만지며 "축하한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의 말대로 박재명도, 한국 육상도 모두 축하 받을 만했다. 아시안게임 사상 투창 첫 금메달을 육상 마지막 날에 따냈기 때문이다.

◆ '창던지기 나라' 핀란드에서 왔다

에사는 신필렬 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이 핀란드 육상연맹 회장에게 간청해 올 3월 데려온 투창 전문가다. 핀란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투창 세계 최강국.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한 번도 메달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현역이던 1977년, 세계 최초로 80m 벽을 깼던 에사는 핀란드 대표팀 코치로 87년 로마 세계선수권과 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이끌어낸 '금 제조기'다.

◆ 돌아가겠다

에사는 좌절부터 해야 했다. 훈련이 고되자 '강의 들으러 학교 가야 한다' '몸이 아프다'며 빠지는 선수가 속출했다. 스트레칭과 트랙 달리기 등 기초훈련을 많이 시키자 "내가 창던지기 선수인지, 달리기 선수인지 모르겠다"는 불평도 터져 나왔다. 가을이 되자 이번에는 "전국체전에 내보내야 하니까 선수를 빨리 풀어달라"고 시.도에서 아우성이었다. 에사는 육상연맹에 강하게 항의했다. "폼이 완성된 선수를 뜯어고치는 일도 힘든데, 툭하면 선수를 빼내가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며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때마다 신필렬 회장이 설득했고, 에사는 속초로, 부산으로 가서 낚시를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에사 코치(右)가 금메달을 확정한 뒤 달려온 제자 박재명의 등을 두드리며 축하하고 있다. [도하=연합뉴스]

◆ 한국의 투창 잠재력은 무한

에사는 투창이 한국인의 체형에 딱 맞는 종목이라고 말한다. 그의 지론은 투창이 덩치나 힘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근력을 이용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박재명은 "그동안 빠른 스윙으로 거리를 늘리려 했는데 에사 감독님에게 몸을 쓰는 법을 배웠다"고 실토했다. "팔로만 하지 말고 좀 느리더라도 미들섹션(허리.복부)을 이용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고 했다. 자신감도 심어줬다. 항상 "너의 체격(1m80cm, 95kg)이면 세계적인 조건"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금메달을 따던 날 아침에도 "오늘은 너의 날"이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연말이면 계약기간이 끝나는 에사는 곧 핀란드로 돌아간다. 에사는 "뭔가를 이뤄놓고 떠나게 돼 한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도하=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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