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삼중 주차, 소방차 접근 막아 강남 아파트서 화재 … 2명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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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대치동 선경아파트. 8층에서 시작한 불이 번져 10층까지 그을려 있다. 이 날 불로 9층 주민 2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했다.[뉴시스]

13일 오전 4시30분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 8층 김모(63)씨의 집에 불이 나 위층으로 번지면서 9층에 살던 주민 이모(50.여)씨와 아들 원모(24)씨가 불을 피해 뛰어내렸다가 숨졌다.

불이 난 김씨 일가족 등 아파트 주민 5명은 연기에 질식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새벽 시간대에 불이 나 이씨 모자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밖으로 나왔다가 연기가 자욱해 앞이 안 보이자 탈출구를 못 찾고 밖으로 몸을 던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 모자는 계단으로 내려가다 8층과 9층 사이의 복도 창문으로 뛰어내렸으나 골절상을 입고 숨졌다.

◆ 주차난에 사라진 소방도로=불이 난 선경아파트는 1983년 완공된 오래된 아파트다. 지상에 있는 주차장은 가구당 채 한 대도 대지 못할 정도로, 주민들은 만성적인 주차난에 시달린다. 이날 불이 난 1동 앞에는 30여 대의 차가 이중 삼중으로 일렬 주차돼 있어 소방차의 진입이 불가능했다. 오전 4시58분 강남소방서에 화재신고가 들어온 뒤 28대의 소방차가 5시4분쯤 도착했지만 아파트 입구에서 발이 묶였다. 주차된 차들과 아파트 사이의 도로 공간이 불과 2.5m 정도였기 때문이다. 길이 11m가 넘는 고가 사다리차가 회전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소방서 관계자는 "사다리차가 들어가려면 최소 6m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9층 주민이 대피하다 소방차가 보이지 않자 불안해 뛰어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소방차만 접근할 수 있었어도 주민이 숨지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다리차와 물탱크차는 출동한 지 20여 분이 지나서야 주차된 차를 일부 치운 뒤 1동 뒤편 화단 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숨진 이씨 모자를 제외한 나머지 주민은 옥상에 대피해 있다 계단을 통해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김씨 가족이 다투거나 불을 지른 흔적이 없고, 거실 텔레비전이 많이 탄 점으로 미뤄 전기 합선이나 실수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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