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를 왜 공격하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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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찰파출소가 일부 과격운동권 대학생들의 화염병 공격으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치안본부에 따르면 지난 5일 이후 1주일동안 전국에서 아홉 군데의 파출소가 공격을 받아 건물이 전부 또는 일부 불타고 5명의 경찰관이 크게 다쳤다. 사태가 악화되면서 11일 대구에서는 쫓기던 경찰관이 실탄을 발사해 대학생 1명이 부상하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우리는 일선 경찰관과 젊은 대학생간의 이같은 충돌양상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우선 최근의 대학생에 의한 파출소 습격양상이 종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대 정부 의사표시과정에서 본질과는 관계없이 질서유지 차원으로 이를 저지하는 경찰관과 충돌하고,최루탄을 쏘아대는 경찰관에 맞서기 위해 어느 정도는 방어적 성격의 공격을 했던 것으로 대학생들의 행동은 파악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주부터 일부 과격학생들이 보여준 파출소 습격은 「수서특혜 부정부패 온상 현정권 물러가라」든가 「걸프전쟁주범 미제국주의 타도하자」등의 구호도 없지 않았지만,근본적으로 파출소와 경찰관을 「결사적」으로 공격하려는 행동으로 보여질 정도다. 민원인을 가장하고 파출소 안에 들어가 화염병을 터뜨린다든지,도망가는 경찰관을 각목등으로 추격,폭행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같은 최근의 잇따른 파출소 피습을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공공기관의 상징적 존재인 파출소를 택해 우리 사회에 가하는 테러행위로 규정,강력히 대처해 나가겠다고 한다. 대학생을 실탄 사격으로 부상케까지 한 것은 그런 대응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지며,계속될 경우 더 큰 불상사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당국의 분석으로는 이들 학생들은 운동권내에서도 폭력투쟁을 선호하는 과격그룹이라고 한다. 새 학기를 앞두고 드러나는 행동으로 세력을 과시하고 운동권 내에서 입지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만약에 이러한 분석이 사실이라면 이들 그룹의 학생들에게 우리는 과격행동과 폭력투쟁으로 학생운동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입지를 강화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점을 충고하고 싶다.
시민들의 호응이 없고 대다수 학생들이 외면하는 폭력무장투쟁의 방법을 동원할 때 그 세력은 이미 학생운동세력으로서의 명분을 잃고 말 것이다. 파출소에 불을 지르고,피신하는 경찰관을 추격하는 대학생들을 시민들이 달려들어 몸싸움까지 벌이며 저지했다고 들린다. 전대협마저 학생들의 투쟁의지는 지지하지만 투쟁방법은 무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시 한번 당부하거니와 학생들은 파출소 공격을 중단하라. 파출소는 학생들의 공격대상이 아니다. 그곳은 시민들의 안녕을 책임지고 있는 최일선기관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민원해결의 장이다. 체제의 모순이나 정치의 잘못을 시정해 보겠다는 학생운동의 잘잘못을 우리는 말하고 있지 않다.
파출소와 일선경찰관을 습격해 피해를 줌으로써 그같은 목적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했다면 큰 잘못이다. 폭력은 오히려 더 큰 폭력을 부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도 일부 과격학생들의 비뚤어진 폭력행태는 초기에 근절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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