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사들 논술 공부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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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는 어떻게 만드나요." "팀 구성은 어떻게 합니까."

11일 오후 6시30분 서울 여의도중학교 4층 과학실. 서울 동북고 권영부(47) 교사는 다른 학교 교사들의 질문을 받기에 바빴다. 오후 4시30분부터 3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이날 강의는 여의도 지역 고교의 국어.과학.수학 교과 교사들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강의에는 교사 50명이 참가했다. 권 교사는 "지난달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학교 교사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4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풍문여고. 교사들이 다 떠난 교실에 문향은 교사 등 6명이 모였다. 논술 특별 과외를 받기 위해서였다. 과외 교사는 중앙일보 논술자문단에 소속된 상명대부속여고 권희정 교사다. 문 교사는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는 생각에 모였다"고 말했다.

공교육 교사들이 논술 공부에 빠져들고 있다. 자발적으로 공부팀을 만드는가 하면 유명한 논술 교사를 불러 강의를 듣거나 과외를 받는다. 우수 교사를 뽑아 논술 드림팀을 만드는 학교도 있다. 모두가 2008년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사들로 구성된 논술 연구팀 1000개에 500만원씩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교사들을 자극하는 요인이 됐다.

◆ 너도 나도 '논술 드림팀'=서울 구정고 교사들은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유명 논술 강사들을 학교로 불러 릴레이 강의를 듣고 있다. 강사는 대학교수에서 현직 교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서울고.마포고 등 웬만한 학교에서는 이런 강의가 진행된다. 목표는 교사 논술팀을 만드는 것이다.

경기도 평촌고도 교사들 가운데서 일명 '논술 드림팀'을 구성했다. 이 학교 김학일 교감은 "교육부가 논술 교육연구팀을 지원한다는 발표가 나온 뒤 500만원을 받기 위해 대부분의 학교가 논술 드림팀을 구성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논술을 강조하다 보니 서울의 경우 시교육청이 실시하는 교사 대상 고교 논술연수 기본과정(300명 모집)에 1130명이 몰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중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논술 연수 경쟁률도 4.5 대 1이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교육청 연수가 이렇게 인기를 끈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 무너지는 학교 사이 장벽=지방에서는 학교 간 벽을 허물고 있다. 광주의 경우 한두 개 학교를 중심으로 2005년 시작된 '독서 교육.논술 연구회'가 올해엔 더욱 커져 14개 학교가 참여할 정도로 커졌다. 연구회를 이끄는 풍암고 이봉형 교사는 "우리 학생만이라도 사교육에 맡기지 말고 우리 손으로 가르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다양한 교과 교사들이 모여 통합교과형 논술 연구를 하는 동시에 지난달부터 2월 말까지 광주지역 고교생 220명을 직접 가르친다.

울산에서도 최근 인접한 3~4개 학교의 국어.사회.과학 교사가 모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교과 교사들이 모여 함께 연구하고, 학생을 가르친다. 울산제일고 고용우 교사는 "지방에서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학교 교사들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논술 열풍의 그늘=교사들 사이의 논술 열풍에 대한 비판도 있다. 서울 S고 박모 교사는 "교육청이 지원금을 미끼로 논술팀 만들라고 부추기고 있는데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교사가 많다"고 말했다. 통합교과형 논술이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데다 여러 교과 교사들이 팀을 이뤄야만 제대로 된 논술을 가르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울 A고 교사는 "연간 500만원의 예산을 따려고 억지로 교사들이 팀을 만드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교육부가 교원 연수와 교육과정 개편 등 실질적인 대책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원진.김은하.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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