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찬바람이 불면… 따뜻한 게 그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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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구~, 시~원허다."

밤새 원고를 마감하고 동네 목욕탕에 들른 소설가 구보씨. 일요일이라 평소보다 손님이 많다. 두평도 안되는 탕은 옆 사람과 맨살이 닿을 만큼 비좁다. 보글보글. 뜬금없이 거품이 올라온다. 왼편 꼬마놈 표정이 수상타. 힐끗 눈을 흘겨준 뒤 사우나로 향한다.

사실 구보씨는 아침부터 심기가 편찮다. 막내놈이나 데려올까 했는데, 친구들이랑 찜질방에 간단다. 그러더니 게임기랑 만화책을 챙긴다. 찜질방에서 놀기로 했다나? 서운한 마음에 목욕탕에서 무슨 오락이냐 했더니, 아빠하곤 얘기가 안 통한단다. 나 참,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목욕탕에서 등 밀어줄 적이 좋았지. 뜨겁다고 울고불고 하던 놈이 이젠 구보씨보다 머리 하나가 더 얹혀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목욕탕엔 서로 등 밀어주는 부자가 보이지 않는다. 때 미는 모습 자체가 흔치 않다. 요즘 애들은 몸에 때도 안끼나? 쓰고 버린 '이태리타월'도 안 보인다. 아깝지만 내 돈 들여 하나 사야겠다.

구보씨는 지금 이곳이 좋다. 20년 단골이다. 낡아빠진 사우나의 퀴퀴한 냄새가 살갑다. 요즘엔 동네 목욕탕도 거의 다 찜질방으로 바뀌었다. 여기만 옛날 그대로다. 집사람은 아예 새로 생긴 찜질방에서 산다. 아파트 부녀회 모임을 그곳에서 한단다. 하루는 노래자랑에서 1등했다며 찜질복 한벌을 받아왔다. 그래도 수건을 슬쩍 해오는 버릇은 여전하다.

냉탕에 뛰어들었다. 애들이 보든 말든 맘껏 헤엄쳐본다. 불쑥 세상 참 좋아졌다란 생각이 든다. 명절이나 돼야 묵은 때 밀러 왔는데. 허물이 벗겨져라, 참 열심히도 밀었는데. 온양 온천으로 갔던 신혼여행 기억이 새롭다. 마누라도 그땐 참 고왔다.

역시 개운타. 얼굴도 뽀얘졌다. 옛말치고 틀린 게 없다니까. 목욕이 보약 한첩보다 낫다잖아. 요샌 수십만원짜리 스파도 있다던데. 그런데 스파가 뭐지? 목욕이 스파 아닌가?

휴게실에 놓인 이번주 week&을 펼쳐 들었다. 어라? 목욕 특집이네. 온천, 스파에 찜질방까지. 그래, 온천에 발 담가본 지도 오래됐지. 어디가 좋을라나.

(사진은 충남 아산 스파비스의 야외 온천 레몬탕)

손민호 기자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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