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어 연단에 오른 반 총장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농담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클린턴 뒤에 연설하는 건 프랭크 시내트라 뒤에 노래하는 셈"이라고 비유, 웃음을 자아냈다.
반 장관은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을 향해서도 기분 좋은 우스개를 했다. 그는 "아난 총장이 남긴 족적은 너무 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치켜세웠다. 그러곤 "잘 다듬어진 수염을 길러야 할지, 더운 나라에 갈 때 사파리 점퍼를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내가 내린 답은 아난의 코디네이터 팀을 쓰는 것"이라고 해 좌중을 웃겼다.
자신의 별명도 유머 소재로 활용했다. 반 총장은 자신을 "한국에서는 '미끈미끈한 장어', 미국에서는 '테플론 외교관'이란 별명으로 통한다"고 소개했다. 테플론은 듀폰사가 개발한 고분자 화합물로 프라이팬 표면에 코팅하면 음식 등이 잘 달라붙지 않는다. 결국 언제나 요리조리 빠져나간다는 뜻인 셈이다. 그는 이어 "이 별명들은 언제든 비밀요원처럼 당신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의 유머는 연설 말미에 절정에 달했다. 반 차기 총장은 크리스마스 캐럴인 '산타클로스 이즈 커밍 투 타운(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산타 할아버지가 마을로 오시네)'을 '반기문 이즈 커밍 투 타운(Ban Ki Moon is coming to town.반기문 총장이 마을로 오시네)'으로 개사해 직접 노래를 불렀다. 서툰 노래 솜씨였지만 그는 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와 관련, 미국 뉴욕 타임스(NYT)는 9일 인물란 한 면에 걸쳐 반 총장을 다뤘다. NYT는 그의 성장 과정과 숨겨진 일화 등을 소개하며 반 총장의 겸손함과 호감 주는 태도는 계산된 행동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NYT는 "그간의 스타일로 볼 때 그는 장군보다 비서 같은 총장이 될 거라는 예상이 많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10년 전 똑같은 평가를 들었던 아난 총장도 장군으로 임기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NYT는 또 "겸손함을 단호함과 열정 부족으로 해석해선 곤란하다"는 반 총장의 발언도 소개했다.
반 차기 총장은 11일 워싱턴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난 뒤 뉴욕으로 돌아와 14일 유엔 총회에서 취임 선서를 할 예정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