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지전투/미­이라크 엇갈린 평가(걸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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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 “모기 물린격” 이라크 “지상전 서곡”/“무모한 자살공격” 평가절하/미국/사상자 낸뒤 반전여론 유도/이라크
이라크군의 기습공격으로 지난달 29일 밤∼31일 낮(현지시간) 사이에 벌어졌던 「카프지전투」가 다국적군의 재탈환으로 일단락지어진 가운데 향후 지상전 전개방향의 단초가될 이번 전투를 놓고 이라크·다국적군측의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카프지전투를 시발로 이라크군은 31일 밤 접경지대의 움후줄 마을 부근에서 미 해병대와 또다시 교전을 벌였으며 와프라 근처에는 이라크군 6만여병력이 대규모 지상전 준비를 위해 집결하는등 새로운 전황들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이에 앞선 지난 2주간 걸프전 양상이 다국적군의 공습→이라크의 미사일공격 응수였던데 비해 최근에는 주로 이라크군 지상기습→다국적군 대대적 반격의 패턴으로 바뀌고 있으며 공방의 주무대도 공중→지상으로 옮겨진듯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군측은 외견상의 이같은 변화자체를 부인하면서 그 분수령을 이루는 카프지전투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노먼 슈워츠코프 사우디주둔 미군사령관은 카프지전투가 자신에게는 『모기가 코끼리를 문 격』이라고 말했으며 워싱턴의 토머스 켈리 미 합참작전국장도 카프지에서 올린 이라크군의 전과는 『매우 하찮은 것』이라며 『실컷 얻어맞을 짓을 했다』는 정도의 평가만을 내리고 있다.
한편 이라크측은 카프지전이 『우뢰와 같은 폭풍의 시작』이며 『대규모 지상전의 서곡』『영웅적 승리』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전투의 전과만을 보자면 다국적군측은 이라크 탱크 22대 파괴,이라크군 3백명 사망,5백명 생포(다국적군 주장)의 성과를 올렸으며 반면에 이라크군은 미 해병 11명 사망,2명을 생포하는데 그쳤을 뿐이다.
이라크군이 제공권을 상실한 마당에 우세한 화력의 다국적군을,그것도 선제공격해 들어온 것은 명백한 「자살공격」이라고 미군측은 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전과상의 차이가 그렇게 분명한데도 이라크군이 카프지전투를 「대승」이라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상징적 승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라크의 한 군대변인은 『이번 (카프지)공격이 점령을 위한 것이 아니며 전황에 따라 합법적 자위권의 범위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으며 바그다드 라디오방송은 『침략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우선 전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국적군의 공습이 바스라항 부근에 집중,쿠웨이트내 이라크군 보급로 차단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라크군은 그 주공격목표를 이번 지상기습공격을 통해 쿠웨이트­사우디 접경지역으로 바꾸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될 수 있다.
또 한가지는 비록 11명의 미군 사망,1명의 여군을 포함한 2명의 미군을 생포했을 뿐이지만 이라크측으로서는 그것이 현재 걸프전을 지지하고 있는 미국내 여론을 반전분위기로 몰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하는듯 하다.
앞으로도 이라크는 지상전을 계속 유발,자국의 사상자수는 일단 도외시한채 미군의 희생이 늘어날수록 미국내에서는 「제2의 베트남증후군」이 확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국적군이 전면적인 지상전 전개준비가 안되어 있는 틈을 노려 방어태세가 부실한 「카프지의 허」를 노림으로써 이라크군의 사기를 높이는 효과와 함께 다국적군의 대응태세를 시험해볼수 있었다는 점도 이라크로서는 일단 이득이라고 평가하는 것 같다.
이라크군의 카프지공격이 다국적군 부대가 카프지 남부 교외에 포진한 시기를 노린 것이라든가 미 해병대가 이라크군의 공격을 받고 남쪽으로 3.2㎞ 후퇴했다는 점,그리고 이라크 탱크가 포신을 뒤로 하고 투항하는 척하다가 돌격해 들어가는 기만전술을 폈다는 점과 야간전투 능력을 과시한 것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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