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언 교슈직 신뢰다질 제도보완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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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식·지성·인격」이라는 단어의 향기를 채취해 볼 수 있는 대상은 바로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이것은 곧 단어의 향기가 짙을수록 그 의미를 뒷받침하는 책임이 요구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울대 음대 입시 부정사건은 충격에 앞서 상아탑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모든 국민을 우롱·기만한 처사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구조의 모순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우선 부정으로 합격시킨 파렴치한 교수들이 어떻게 대학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가 묻고 싶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특별한 시험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단지 박사학위로, 연줄로, 그리고 거액의 돈으로 그 힘든 자리를 얻었음에 틀림없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즉, 교수가 되기위해 거액을 투자했으니 「나도 본전을 뽑아보자」는 속셈에서 저질러진 일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학생을 대상으로 도박을 한 셈이다.
학부형들이여, 교수들이여. 신선한 도전을 꿈꾸고 있는 젊은 일꾼들을 「돈」이라는 무기로 어떻게 그리 무자비하게 공격할 수 있는가.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머리가 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렇게 돈을 좋아해서 돌아버린 사람들 밑에서 어떻게 교육이 이뤄질 수 있겠는가. 심히 걱정되는 앞날이다.
이번 기회에 교육부에서는「교수등용문」에 대해 새로운 엄격한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돈으로 사는 교수직이 아닌 학문적 인격적 자질을 갖춘 이들의 등용문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를테면 일찍이 학문이 발달한 프랑스에서 시행하는 「아그레 가숑」(Agregation·대학교수 자격 취득시험)을 우리실정에 맞게 바꿔 「교수직」에 대한 위엄을 부여했으면 한다.
이는 우리의 「고시」와 같은 성격으로 어렵고 험난한 길임에 분명하다. 프랑스에서는 이 시험을 위해 2박3일에 걸쳐 백지에 방대한 논문을 만들어내야 하고 이어 구두시험으로 응시자들의 실력을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교수직」에 대한 신뢰를 구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기에 양심과 인격테스트를 추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번 사건이 양심과 인격이 결여된 교수들의 직책 악용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교육이 정말 한 인격체를 완성시키는 기본 모델로 남기 위해서는 교육의 근본목표를 다시한번 짚어보고 질적인 교수양성을 위한 제도를 지금부터라도 고려해 보았으면 한다.
장금식 <서울 동작구 상도1동 326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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