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잘 보내려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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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여대음대 클라리넷부문 실기시험 부정사건으로 28일 구속된 학부모 김모씨(55·여)는 처음부터 돈을 주고 딸의 합격증을 사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딸이 예고 졸업반이던 지난해 10월 1년여동안 개인지도해온 채교수(38·구속)가 뜻밖의 제안을 하더군요』 채교수는 그 바닥에서 실력있고, 특히 대학입시교습을 맡았다 하면 꼭 합격시킨다고 정평이 나있었다.
제안내용은 E여대가 실기점수 비중이 높으니 그곳을 지원하려면 심사위원에게 부탁해야 한다며 이런저런 비용이 5천만원이 든다는 것이었다.
『예능계대학 입학을 둘러싸고 금품이 오간다는 말은 자주 들어왔지만 채교수의 요구액은 상상 밖이었습니다』 가구점을 하면서 월수입 5백만원쯤 되는데다 고향인 대전의 7천만원짜리 단독주택을 처분해 돈은 있었지만 액수가 너무 커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꼭 붙는다는 보장이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어 채교수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채씨가 「바쁜 일이 었다」는 등 이유를 대며 레슨받으러 간 딸을 1주일동안 계속 되돌려보내 「이게 아니다」싶더군요』 김씨는 10월초부터 연말까지 4천만원, 1천만원, 3백만원 등 세차례에 모두 5천3백만원을 채씨에게 건네주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과 국졸학력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내딸만은 꼭 어엿한 대학생을 만들어 좋은 집에 시집보내야 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이 때문에 딸이 국교 6학년이 되면서부터 클라리넷 개인교습을 시켜왔고 고 2때부터는 소문을 통해 「용하다」 고 소문난 채교수를 소개받았던 것이었다.
『합격이 되고난 직후에는 역시 돈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서울대 음대 목관악기 실기시험 부정사건이 터진 다음날 한 심사위원의 부인이 「없던 일로 하자」며 부랴부랴 모아들고온 돈이 1천7백만원밖에 되지않아 다시 한번 놀랐다. 자신에게서 5천3백만원을 받아간 채교수를 떠올리며 그 경황에서도 입맛이 쓸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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