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솜씨 한량순씨댁 그림|3대로 이어지는 손재주 화폭위에 꽃피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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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집안의 빼어난 솜씨로만 대물림되던 규방문화가 현대사회와 접목되면서 하나의 직업으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한량순씨(62·한국사회체육센터 이사장·서울방이동 올림픽패밀리아파트311동 1004호)와 딸 최선명씨(32·서양화가)로 이어지는 그림솜씨는 규방솜씨를 후대가 꽃피워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다.
한씨의 묵화와 붓글씨 솜씨는 수준급으로 정평난지 오래. 특히 대나무와 모란, 그리고 예서체·고체글씨가 빼어나 스승인 고 최례정씨(전 연대 가정대학장)의 기념저서 『기워진 조각보』를 발간할때 그의 모란작품이 실리기도 했다.
한씨에게 붓은 오랜 친구가 된다. 코흘리개 꼬마시절부터 정월초하루가 되면 사랑채에서 두 오빠·언니와 어깨를 맞대고 선친(기석씨·한성은행근무)이 과제로 내준 「영」자를 쓰곤했다.
그는 「영」이라는 글자에 모든 글씨의 획이 종합되었다는 부친의 가르침이 옳았다는 것을 정식으로 붓글씨를 익히면서 알게됐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이순희씨)도 『춘향전』『심청전』같은 전래소설들을 흘림체 글씨로 한지에 옮겨 적고 겉장은 곱게 기름을 먹여 두었다가 친척이나 이웃의 젊은 부인들이 집에 오면 모아놓고 읽어주곤 했던 것을 그는 기억한다.
손재주가 많았던 한씨가 묵화로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된 것은 60년 서울YWCA 묵화반이 생겨난 것이 계기. 정상급 동양화가인 고 박래현씨(운보 김기창화백의 부인)가 지도를 맡았던 이 묵화반에는 이방자여사도 수강하러 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는 여기서 약 6년간 공부했다.
사군자에서 화조로 점차 단계를 올라가던 그는 70년에는 동양화·서예 병풍 네 점을 전시회에 출품하기까지 했다. 크리스마스 때면 직접 사군자를 쳐서 카드를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아들이 결혼할 때는 며느리에게『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로 시작되는 고린도전서 13강을 고체로 써서 선물하기도 했다.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그림을 그리거나 붓글씨를 쓰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란 딸 최선명씨가 대학(연세대·불문학)을 졸업하고 마침내 대학때 전공과는 다른 화가의 길로 뛰어든 것을 어찌보면 극히 당연한 일. 홍대부고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최씨는 82년 도미, 뉴욕 파슨디자인학교를 거쳐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주립대학에서 미술석사가 됨으로써 정식 화가의 길을 걷게됐다.
텍사스 미술가협회로부터 그럼배처상(84년)·로이 크레인상(87년)을 수상, 주목받는 신예가 돼 88년 귀국한 최씨는 89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이달의 작가」로 선정되는 등 국내화단에서도 그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어머니의 충고를 들으며 그림을 그렸던 최씨는 이젠 한씨에게 가장 매서운(?) 비평을 해주는 전문가가 됐다. 대(죽)를 즐겨치는 한씨가 온 정신을 다해 그려놓은 풍죽을 보고 『대나무잎에서 느껴지는 센 바람결이 대줄기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제가 서양화를 그리고 있지만 감성이나 정신은 어머니와 닯아있다고 생각해요. 미국화가들의 선은 강하고 파괴적이지만 우리는 다분히 감성적입니다. 화면 가득히 붓자국을 보여주며 이리저리 선을 그어가는 제 추상작품도 감성적이라는 면에서 붓위에 동전을 올려놓아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신과 마음을 함께 실었던 어머니의 선과 닮았지요.
최씨는 이같은 정신의 토양은 가정문화 속에서 저절로 생성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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