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스파이더 아빠' 농성…1주일째 크레인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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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명물 타워브리지가 '스파이더맨(spider man)'의 농성장으로 바뀌었다. 타워브리지와 붙어 있는 30m 높이의 대형 크레인 위에서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데이비드 칙(36)이 일주일째 농성하는 바람에 구경꾼이 모여들고 타워브리지가 나흘간 통행금지돼 시내 교통에 차질이 빚어졌다.

웨스트서섹스 출신인 칙은 "세살 난 딸을 보게 해달라"며 농성 중이다. 스파이더맨은 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다.

아버지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모임인 '파더 포 저스티스(Father 4 Justice)'의 후원자이기도 한 칙은 지난달 31일 크레인에 올라가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농성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권리'란 곧 자식을 볼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영국의 경우 부부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이혼할 경우 대부분의 자녀 양육권은 어머니에게 돌아가는데, 어머니들이 아버지에게 자식들을 만날 기회를 주지 않는다. 2001년 법원 통계에 따를 경우 5만5천30건의 자녀접견명령(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만날 기회를 주라고 법원이 어머니에게 명령하는 것)을 내렸으나 절반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재혼한 어머니들이 아이와 아버지의 만남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아버지들이 법원에 접견권 보장이나 양육권 관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아버지들에게 별로 효율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데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를 보지도 못하고 소송비용으로 몇천만원을 날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딱한 아버지들의 모임이 '파더 포 저스티스'다.

이 모임은 성명에서 "비 오고 바람 부는 날 위험한 크레인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처지를 생각해보라. 자식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해소되지 않는 한 앞으로 수퍼맨과 배트맨들이 크레인에 줄을 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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