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계자금 운용 쇄신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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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다른 사업자단체도 구태 척결을
국회의원들의 뇌물성 외유사건을 계기로 무역협회가 관리하고 있는 무역진흥 특별회계자금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자금의 관리와 사용에 문제가 많으니 대폭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아예 특별회계 자체를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원래 무역진흥 특계자금은 수출확대와 통상외교,무역정보 수집활동 등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 주도아래 69년부터 수입업자들로부터 징수해온 돈이다. 초기에는 수입금액의 1%씩 떼던 것을 지금은 0.15%씩 떼고 있다 한다.
그러나 수입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시행 첫해에 20억원 수준이던 자금 규모가 89년에는 4백52억원,90년엔 5백40억원이 걷혔고,올해에도 5백50억원 이상이 걷힐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처럼 막대한 자금이 「임자없는 돈」으로 인식되어 이번 국회의원들의 외유에서 드러났듯이 이 사회의 힘있는 사람들이 멋대로 쓸 수 있는 자금으로 운용되고 있다는데 있다.
구체적인 자금의 운용내용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통상외교라는 말에 비슷하게라도 걸칠 수만 있는 경우라면 당연히 이 자금에 손을 대려하고 그렇지않은 경우라도 자금의 관리주체가 허약한 민간단체라는 약점을 이용,힘으로 눌러 돈을 빼내 쓴 사례조차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계자금이 정치자금으로 쓰이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성격의 자금은 세상에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용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특히 우리처럼 수출에 경제의 명운을 걸고 있는 나라에서 제약이 많은 국제통상환경에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다각적이고 임기응변적 대응이 필요하며 그런 경우에 번잡한 절차없이 쓸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무역업자들이 수입액의 0.15%라는 적지않은 돈을 부담하고 있고 그같은 제도가 20년 이상 지속돼온 것도 그 때문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는 특계자금에 문제가 있으니 당장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철폐문제는 앞으로의 과제임에는 틀림없으나 지금처럼 통상환경이 악화되고 수출부진으로 나라경제가 어려운 시점에서는 현실적으로 적지않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금의 관리와 운용이 지금처럼 난맥상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자금의 조성이 수입상품의 가격인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궁극적으로 국민의 부담으로 연결된다는 논리적 과정으로 보아서도 그렇거니와 지금 우리가 처한 경제여건으로 보아 엉뚱한 곳에 쓸 여유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의원외유라는 개탄할 사건발생을 계기로 특계자금의 목적과 사용방법 등을 전면 재검토,바른 기준을 세우고 자금사용에 관한 감시기구를 재정비,앞으로 국민의 의혹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
동시에 이같은 작업은 무역특계자금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비슷한 활동을 하는 각종 협회등 사업자단체들에 대해서도 확대,사업자 단체가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라는 인식을 불식시켜 나가야 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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