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 「특별택지」 재검토해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시가 공영택지개발지구인 서울 강남구 수서지구의 택지를 직장주택조합에 특별공급키로 한 것은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충분한 검토를 거쳐 결정된 기존 방침이 시장이 바뀌었다 해서 하루아침에 1백80도로 달라진 것 부터가 문제다. 수서지구는 이미 1년전부터 문제가 되어 서울시가 건설부와 협의까지 하며 모든 면에서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 특별 공급불가 방침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시는 주택조합에 대한 특별공급이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불가능하다는 점을 공식발표한 바 있고 고건 전 시장은 공개석상에서 지역주민들에게 그것을 재확약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시장이 바뀌자 그런 법적 해석과 행정방침이 하루아침에 백지화되었음은 물론,정반대의 방침이 나온 것이다. 이래서야 어떻게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겠는가.
단순히 행정의 신뢰성이 무너졌다는 문제 이외에 과연 그것이 합법적인 조치인가에도 문제가 있다. 법은 하나인데 이렇게 완전히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한 것인가. 백보를 양보해 법규의 미비로 그런 해석상의 혼란이 있을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방침변경은 일단 뒤로 미루고 법규 정비부터 한 뒤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당연한 순서 아닌가.
또 주택조합에 대한 특별공급은 택지 공영개발의 목적과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사유지를 국가가 강제수용하고 자연녹지를 택지로 용도변경하는 것은 전체 국민을 위한다는 큰 목적을 위해서나 용인될 수 있는 것이지 특정조합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는 아니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이번 특별공급은 공정하지도 않고 형평에도 어긋난다. 택지지정 이후 조합을 구성한 사람들에게까지 연고권을 인정하면서 강제로 땅을 수용당한 토박이들에게는 연고권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 과연 합당한 조치인가. 또 공영개발된 택지를 소유한 합법적 자격이 있는 40여만 청약예금자들이 특별 공급된 것만큼 분양기회를 잃게 된 것은 어떻게 설득할 작정인가.
이번 서울시의 조치로 택지개발지구내의 토지는 특별분양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행정원칙이 깨져버렸다. 이에 따라 공공목적을 위한 토지수용과 택지공영개발은 큰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었다. 앞으로 다른 택지공영개발 지역에서도 연고자들이 다투어 주택조합을 구성하고 이번 처럼 특별공급을 요구한다면 어쩔 것인가.
시중에는 이와 관련해서 갖가지 의혹과 소문이 무성하다. 특별공급분에 대해선 한 건설업체가 시공을 도맡게 되어 있고 국회 건설위가 서울시에 특별공급을 청원한 바 있으며 여러 기관에서도 서울시에 특별공급 허용을 요구한 바 있고 보면 그런 소문과 의혹도 전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서울시가 특별공급 허용방침을 철회하고 문제를 처음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정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행정방침에는 누가 보아도 타당한 법적 근거와 논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 것도 없이 사람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행정의 독선이며 횡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