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돼지저금통 대신에 차명계좌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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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대선 때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캠프에서 차명계좌까지 동원해 대선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나 놀랍기만 하다. 검찰이 어제 밝힌 당시 민주당 대선 캠프의 자금관리 행태를 보면 공당(公黨)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일반 범죄자들의 범죄 수법마저 연상시킬 정도다.

차명계좌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부정한 돈의 흐름을 숨기기 위해 남의 이름으로 개설한 계좌다. 그러기에 검은 거래엔 어김없이 등장한다. 공당이 선거를 치르며 차명계좌로 정치자금을 받았으니 범죄조직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당시 민주당 측은 불법적인 자금을 얼마나 받았기에 이런 차명계좌까지 동원했는가.

그런데도 선거 직후 민주당 관계자들은 돼지저금통을 모아 선거를 치렀다며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한 선거였다고 자랑했다. 이후 굿모닝시티 사건 수사 등을 계기로 몇 차례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당시 자금관리 책임자였던 열린우리당의 이상수 의원은 수시로 말을 바꿨다. 오죽하면 한솥밥을 먹던 민주당까지 나서 변칙 회계처리 의혹 등을 제기했겠는가. 지금까지 합법적으로 대선자금을 처리했다고 강변해왔으니 그 낯 두꺼움에 기가 막힐 지경이다.

민주당의 대선자금 수사는 곧바로 노무현 대통령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만큼 수사에 어려움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검찰이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 벌써부터 야당에선 '기획수사'니 '야당 탄압'이니 하며 수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 수사가 패자에겐 칼을 휘두르고, 승자에겐 솜방망이를 휘두른 결과가 된다면 이번 수사는 실패다. 야당은 물론 국민 여론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결국 특검이 재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한 점 의혹도 남기지 말고 민주당의 대선자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의혹이 제기된 당선 축하금의 규모도 상세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야당의 대선자금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