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 기름값」 왜 빗나갔나/「폭락」 못내다본 고유가 예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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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 선제공격 성공”으로 단기전 예상/공급불안요인 가셔 “과잉” 전망까지
걸프전쟁에 따른 각국 정부나 각 연구기관들의 유가나 주가전망이 너무 빗나가 업계나 일반투자자들이 크게 당혹하고 있다.
석유위기때마다 경기전망이나 유가등에 관한 예측이 제대로 맞은 적이 없다.
걸프전쟁발발이전 와튼경제연구소(WEFA)·세계은행·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 등은 모두 고유가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
대개 3단계의 전쟁상황을 가정,석유수급 및 유가전망을 내놨다.
1개월 이내의 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전쟁기간중 유가가 일시적으로 배럴당 40∼5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복구가 끝나면 20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동전지역으로 전쟁이 확산되는 경우 유가는 폭등할 것이라는 것이 모든 예측기관들의 공통된 전망이었다.
우리정부도 전쟁이 발발한 17일 대통령주재의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이와 거의 비슷한 전망을 토대로 석유수급안정 및 에너지소비절약대책을 수립,시행키로 했다.
정부는 19일 0시를 기해 국내유가인상을 단행한다는 계획까지 짰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 즉각 유가가 급등하리라는 전망과 달리 18일 아침 외신을 타고 들어온 소식은 「폭락」이었다.
두바이·오만·브렌트유의 국제석유현물시세는 배럴당 23∼28달러대에서 15∼19달러대로 하락했다. 18일도 유가는 배럴당 1.4∼1.6달러씩 하락했다.
동자부 이동규 석유조정관은 『그동안 유가가 올랐던 것은 물량부족 때문이 아니고 전쟁발발시 공급불안을 염려한 때문인데 미국의 성공적인 선제공격으로 그같은 불안요인이 가셔짐에 따라 유가가 폭락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또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났을때 전재복구에 필요한 자금마련을 위해 이라크·쿠웨이트가 산유량을 늘릴 것이므로 석유는 공급과잉이 될 것이라는 석유상들의 분석도 유가폭락의 한 요인이다.
실제 석유현물시장에서는 투매현상까지 일어났다. 미국의 비축무량방출도 유가하락을 부추겼다.
그런데 왜 세계적인 경제예측기관들은 모두 잘못된 전망들을 내놨을까.
이에 대해 이덕훈 부총리 자문관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경제예측모델을 만들고 거기에 여러상황이나 숫자를 넣어서 나온 결과가 경제전망이므로 전쟁과 같은 가변적 요소들을 전제로한 유가전망은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수학처럼 공식에 의해 정확한 답이 나올 수 없는게 경제현상이라는 것이다.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변화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데 이를 정확히 점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주가전망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 상식이다. 그뒤 전황에 따라 주가가 등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 일부 경제연구소는 전쟁발발시 종합주가지수가 5백70선까지 밀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종합주가지수는 16일의 6백13에서 18일 6백67까지 치솟았다.
세계증시도 걸프전개전 첫날 폭등했다. 반면 전쟁이 일어났을때 오르는 금값은 하락했다. 모두 기존의 상식이나 예상을 빗나간 것이다.
1,2차 석유위기나 85년말이후의 저유가시대를 정확히 전망한 경제예측기관은 없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일정한 공식을 만들어 앞으로의 경제를 예측해야하는데 과거에 그같은 경험도 없었는데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논리로 유가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나 민간기업들은 불투명한 유가전망 때문에 몹시 곤욕을 치러야 했다.
3저시대가 시작된 85년말에서 86년초 유가가 얼마나 떨어질 것인가를 정확히 내다보는 것은 정유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국내 모정유회사는 86년초 유가가 더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선물시장에서 유조선 5척(7백50만배럴)의 물량을 잡았다가 유가가 계속 하락하는 바람에 큰 손해를 봤다.
원당을 대량 확보했다가 그후 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크게 낭패를 본 기업도 있다.
유가나 원자재가격등락을 정확히 점친 사람은 선물시장의 투기꾼이었다고 한다.
유가·주가뿐만 아니라 경기예측도 잘맞지 않는다. 지난해 정부나 한은,한국개발연구원등의 경기전망은 모두 크게 빗나갔다.
건설경기를 잘못봤기 때문이다. 토지공개념 강화로 빈터에 대한 세금이 크게 늘어나자 너도나도 집을 지어 세금을 적게 내려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따라서 각 기관이 보다 정확한 예측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확한 정보와 자료를 축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경제전망은 한낱 경제의 방향을 가늠하는 척도로만 여겨진다.<이석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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