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FTA 집회' 국가기관끼리 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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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찰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를 금지하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이를 허용하라는 상충된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인권위는 5일 "FTA 반대 집회를 금지한 조치는 기본권 침해"라고 경찰에 통보했다. 경찰은 "폭력시위가 예상된다"며 금지 방침을 고수키로 했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6일 서울광장.종묘공원 등 전국 10곳에서 2만 명이 참가하는 '3차 총궐기대회'를 열 계획이었다.

◆ 국가기관끼리 '충돌'=인권위는 이날 안경환 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상임위원회를 열고 "평화적 집회를 조건으로 금지 통고를 철회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한다"며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이는 범국본 오종렬 대표 등이 4일 "경찰의 집회 금지로 기본권 침해가 예상된다"며 인권위에 긴급구제조치를 신청한 데 따른 결정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집회의 자유는 민주적 공동체를 위한 불가결한 요소로 헌법의 기본권 중에서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본질적 권리"라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범국본 측이 경찰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거나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등 집회의 평화적 개최 보장을 조건으로 명시했다.

그러나 경찰청 관계자는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범국본은 이의신청과 같은 집시법상 구제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인권위 권고로 집회 금지 통고를 철회한 전례가 없다"고 밝혔다. 범국본과 통일연대 측이 집회를 강행할 경우 5만여 명의 경찰력을 투입해 원천 봉쇄키로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불법 집회를 저질렀던 주최 측이 열려는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될지 인권위가 어떻게 보장하느냐"고 되물었다. 범국본 측은 "이미 평화시위를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기 때문에 별도의 양해각서를 체결할 필요는 없으며 경찰이 금지 통고를 철회하지 않더라도 집회를 강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위 결정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한 네티즌(jejhany)은 "집회는 상황에 따라 금지될 수도 있는 것인데 이렇게 국가기관끼리 다른 목소리를 내면 국민만 불안하다"며 지적했다.

◆ 민노당 집회에 반FTA 시위 우려=경찰은 6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법 규탄 집회'는 수용했다. 경찰은 민노당 집회에 범국본 시위대가 참여해 집회 인원이 9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범국본 측이 집회를 금지당하자 민노당의 명의를 빌려 집회 신고를 한 뒤 실제론 범국본 집회를 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철재.한애란 기자

◆ 긴급구제조치=인권침해가 계속된다는 개연성이 있고, 이를 방치하면 큰 피해가 우려될 때 진정에 대한 정식 결정 이전에 인권위가 피진정인에게 권고하는 것이다. 강제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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