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칼럼

학부모에 교사 선택권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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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늘날 이 교훈은 사교육에서만 반쯤 실천된다. 다들 강남에 가려고 애쓰는 이유다. 덕행은 몰라도 대학 붙여주는 기술은 확실한 강사들을 찾아서다. 공교육 스승은 뺑뺑이로 결정된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못 만나고는 순전히 '복불복'이다. 한국전쟁이 북침이라 가르치는 교사를 만나도, 자기 주장을 위해서라면 법 어기는 게 대수냐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선생을 만나도 다 '팔자' 탓이다. 실제로 그렇게 팔자 사나운 학생들이 제법 많은가 보다. 사법시험 면접장에서 "우리의 주적(主敵)은 미국이나 일본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대답이 나오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하긴 운동권 출신 강사들이 논술학원계를 꽉 쥐고 있다니 학원에서 배운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학원에서 글을 써냈더니 강사가 '잘 쓰긴 했는데 논조가 ○○일보처럼 보수적인 게 문제'라고 하더라"며 혀를 차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학원이야 그 학부모처럼 바꾸면 그만이다. 그런데 학교는 바꿀 수가 없다. 학교를 옮기려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지금이 맹자(孟子) 소싯적도 아니고 어디 쉬운 일인가.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짜건 맵건, 그저 차려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그래서 매년 더 많은 기러기들이 난다.

외국이라고 크게 나을 건 없다. 하지만 분명 바뀌고 있다. 미국에서도 교원노조와 그들이 지지하는 백인 진보 정치인들이 학교선택권 확산에 반대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말처럼 그들은 자기 자제는 비싼 사립학교에 보내면서 서민층의 공립학교 선택권을 거부하고 있다. 자기 아이는 외국 유학이나 최소한 특수목적고에 보내면서 학교 평준화를 주야장천 외치고 있는 우리 고관대작들과 꼭 닮았다.

프리드먼은 학교선택권이 빈곤층에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줄 희망이라 보았다. 죽기 전까지 그 확산을 위해 힘썼다. 그의 말이 맞았다. 평판이 안 좋던 많은 공립학교가 학교선택권 채택 이후 교사 채용을 늘리고 교실당 학생 수를 줄이며 방과후 수업을 강화했다. 학교 평균성적이 낙제점을 받을 경우 자신의 봉급을 깎겠다고 약속하는 교장도 나왔다. 학교 선택권이 시장의 자유경쟁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당장 학교선택권이 어렵다면 우선 교사선택권부터 시작하면 된다. 일본에서 예를 볼 수 있다. 고치(高知)의 현립 마루노우치 고등학교는 지난해 신입생부터 희망담임제를 도입했다. 교사 20명이 스스로 밝힌 교육방침을 보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선택하게 했다. 4지망으로도 안 되면 조정위원회를 열어 결정했다. 교사들은 불만일지 몰라도 학생들의 학업 의욕과 성과는 분명 뛰어올랐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헛껍데기 교원평가제도 싫다고 파업 운운하는 현실이지만 그게 두려워 외면하면 안 된다. 사실 교사들의 파업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대접은 안 하면서 스승의 의무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 교사들도 근로자로서 정당한 권익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대신 학부모.학생들도 문제 있는 교사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훌륭한 스승을 만날 수 있다면 하루 이틀 파업을 한대도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겠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