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결렬” 발표에 세계가 경악/깨어진 담판… 제네바와 각국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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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후세인 일상 사진 보이며 위협/“별내용없다” 아지즈 친서거부/“사실상 전쟁 피할수 없게 됐다”/미 전문가
평화를 바라는 세계인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9일 제네바에서 열린 6시간15분간의 베이커 미 국무장관,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회담은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회담이 자꾸 길어져 한때나마 혹시 모종의 합의가 도출되는게 아니냐는 흥분과 기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이날 회담의 긴장됐던 순간순간을 정리해 본다.
○회견장 갑자기 조용해져
○…회담을 마치고 베이커 장관이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회담종료 후 55분이 지난 이날 오후 7시55분.
회견장을 가득 메운 각국 보도진의 눈과 귀가 집중된 가운데 잔뜩 상기된 표정을 한 베이커 장관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완전결렬」,곧 전쟁이었고 회견장은 일순 충격으로 고요해졌다.
이어 그는 회담결과와 관련,미리 준비한 발표문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고,「완전결렬」의 일보를 알리기 위한 각국 통신사 보도진의 타이프 라이터 소리만이 곧 닥쳐올 불행을 예고하는 듯 했다.
○회담 길어지자 한때 “희망”
○…당초 예상을 깨고 이날 회담이 6시간 이상의 마라톤회담으로 길어져 뭔가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이렇게 회담이 길어질리 없다는 희망적 관측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한때 일부 통신과 방송에서는 모종의 타결 가능성을 성급하게 보도하기도 했었고,이 바람에 파리 증권시장은 이날 전일에 비해 3.3%나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다.
○6시간30분 마라톤회담
○…당초 예정보다 50분이 지연된 이날 오전 11시20분 인터콘티넨틀호텔 1층에 마련된 회담장에서 양국 대표단이 자리를 마주함으로써 역사적인 이날 회담이 개시됐다.
통역 한명씩을 포함,각각 9명씩으로 구성된 양국 대표단은 장방형의 긴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았는데 미국측에서는 베이커 장관을 비롯,로버트 키미트 국무부 정치담당차관·존 켈리 중동문제담당차관보·마거릿 터트와일러 국무부대변인 등이,이라크측에서는 아지즈 장관과 니자르 함둔 외무차관·알 티키더 제네바 대표부대표 등이 참석.
회담시작 2시간만인 이날 오후 1시20분 이들은 점심식사를 위해 약 1시간10분간의 정회를 가졌는데 이 틈을 이용,베이커 장관은 전화로 부시 대통령에게 15분간에 걸쳐 회담내용을 설명했다.
이어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속개된 회담이 계속 길어져 오후 4시45분 15분간의 2차 정회에 들어가 결국 이날 회담은 회담시작 7시간40분만인 이날 오후 7시에 종료. 그중 두차례의 정회시간을 빼면 결국 6시간30분간의 마라톤 회담을 기록한 것.
○…이날 회담에 베이커 장관은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회담도중 아지즈 장관에게 전달했으나 그는 이의 접수를 끝내 거부했다.
아지즈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내용을 읽어보니 도저히 국가원수간에 주고 받을 수 있는 언사가 아닌데다 내용도 신통한게 없어 거부했다』고 밝혔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회담석상에서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에게 이라크의 전략거점을 찍은 사진을 「선물」함으로써 미국이 어느 때라도 이것들을 정확히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베이커 장관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일상 행동을 나타내는 사진도 제시,그의 소재를 매일 미국측이 자세히 파악하고 있음을 알렸다.
○후세인 동생도 대표 포함
○…제네바 평화회담 이라크 대표단 가운데 후세인 대통령의 이복동생 바르잔 이브라힘이 포함돼 있어 이번 회담이 이라크측으로서는 상당한 권한을 위임받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브라힘은 현제 제네바에 있는 유엔 인권회의..대표로 일하고 있는데 이라크내에서는 실세로 알려진 인물.
그는 지난 83년까지 이라크 비밀경찰을 지휘했는데 이번 회의에서는 바르잔 알 티코리티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등록했다.
○미 장성 전술핵 사용 주장
○…일단의 전직 미군 고위장성들은 9일 부시 대통령에게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조속한 종전을 위해 전술 핵무기 공격으로 이라크에 위협을 가할 것을 권고했다.
주한미군 사령관을 지낸 존 싱글로브 중장을 포함한 이들 전직 장성들은 백악관 관계자들이 그동안 페르시아만에서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저지 효과를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고르비,후세인에 메시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페르시아만 위기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소련 관영 타스통신이 9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이날 외무부의 한 성명을 인용,빅토르 포수발류크 소련대사가 8일 바그다드에서 가진 한 회담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이라크측에 전달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제네바=배명복특파원>
○…부시 미 대통령은 제네바에서 회담이 진행되는 시간에 백악관에 미 의회지도자들을 초청,의회가 유엔이 결의한대로 무력사용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
부시 대통령은 간담회 도중 제네바의 베이커로부터 회담결렬 보고를 전화로 듣고 『매우 실망한 표정이었다』고 참석한 의원들이 전했다.
참석한 공화당의원들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왔다』며 민주당의원들의 태도변화를 촉구했다.
부시 대통령은 베이커로부터 결렬통보를 받은 즉시 이 내용을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국왕,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멀로니 캐나다 총리 등에게 통보하고 앞으로 대책을 숙의했다.
○부시 친서 공격내용 담겨
○…페르시아만 사태의 화전여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평가되던 제네바 미·이라크 고위급 접촉이 결렬됨에 따라 사실상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 미 분석가들의 지배적인 전망.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마빈 퓨워저는 『물론 후세인이 마음을 바꾸고 다른 쪽에서 또다른 제안을 내놓을 시간은 있다』고 말하고,그러나 베이커 장관이 전혀 융통성도 보이지 않고 희망도 가질 수 없다고 밝힌 양측의 입장때문에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후세인 대통령은 과거에도 수차례 정책을 극적으로 전환한 전례가 있으나 이같은 입장 전환은 8년을 끌어온 이란·이라크 전쟁처럼 극히 값비싼 대가를 치른 분쟁사태 이후 나온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는 군사적 대결을 목격하게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미 의회 도서관의 중동문제 전문가인 클라이드 마크도 『이라크가 오는 15일전이나 직후 무슨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데에는 비관적인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분석가들은 특히 아지즈가 제네바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후세인 앞으로 보내는 친서의 수령을 거부한데 아연실색하고 있는데 이 친서에는 페르시아만에 배치된 다국적 군대가 감행할 가능성이 있는 대규모 대 이라크 공격 내용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페르시아만 사태」 일지
▲8월2일=이라크군,쿠웨이트 침공
▲6일=유엔 안보리,대 이라크 무역제재 결의
▲8일=이라크,쿠웨이트 합병선언
▲9일=안보리,쿠웨이트 합병은 무효선언
▲10일=아랍정상회담 개최,12개 참가국 이라크군의 즉각 철수요 구
▲25일=안보리,금수이행을 위해 무력행사 허용결의
▲9월9일=부시·고르바초프 헬싱키 회담에서 페만사태 합의
▲25일=안보리,이라크 봉쇄를 공중까지 확대
▲10월17일=미군 20만명 페만에 배치
▲11월8일=부시,페만 병력증파 선언
▲29일=안보리,91년 1월15일까지 철군않을땐 무력사용 승인
▲30일=부시,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 초청. 베이커 미 국무장관 12월 이라크 방문 제의
▲12월1일=이라크 부시제안 수락,일정 연기.
▲1월3일=부시,9일 제네바에서 베이커·아지즈회담 제의
▲9일=베이커·아지즈 제네바회담 협상 결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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