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는 아이들 생애 최초 예술 경험…한 소절씩 선생님 따라 배워야 제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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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호 28면

한국 동요 100년…오세균 동요음악협회장

오세균 한국동요음악협회장이 서울 중랑구의 한 연습실에서 본인이 작곡한 창작 동요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오세균 한국동요음악협회장이 서울 중랑구의 한 연습실에서 본인이 작곡한 창작 동요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노래 중에도 동요처럼 곱고 깨끗하고 좋은 노래는 없다.”

‘짝짜꿍’ ‘졸업식 노래’ 등을 작곡한 정순철이 1924년 ‘신여성’에 ‘동요를 권고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의 일부다.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곱고 깨끗한 노래’가 불리기 시작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1923년 윤극영이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 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이듬해 ‘설날’ ‘고드름’ ‘반달’ 등을 발표한 것을 한국 동요의 시초로 보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이후 강산이 열 번 바뀌는 동안 동요도 함께 변했다. 이에 대해 오세균(83) 한국동요음악협회장은 “전후 피폐해진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1960년대 들어 수많은 동요가 창작되기 시작했고 라디오를 통해 밝고 경쾌한 노래들이 전해지게 됐다”고 회고했다. 1년 중 동요가 가장 많이 불리는 5월이지만 어린이가 동요를 부르는 일은 전보다 드물어졌다. 오 회장은 “동요보다 유행가가 친숙한 요즘 아이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1959년 대전사범학교를 졸업한 오 회장은 40여 년간 교직에 몸담으며 200편이 넘는 동요를 작곡했다. 1990년 제2회 KBS 창작동요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비롯해 14곡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다. 20년째 한국동요음악협회장으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동요계를 대표하는 원로로 꼽히는 그를 지난 14일 만나봤다.

동요음악협회 60년, 회장직만 20년째

요즘엔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이 드문 것 같아요.
“어른들의 잘못이죠. 가장 큰 문제는 학교 교육 방식이 변화한 데 있어요. 요즘은 디지털 음원이 워낙 잘 나오잖아요. 음악시간에도 영상 자료를 틀어요. 영상을 보면 노래 도입 부분부터 전개 과정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거든요. 선생님들도 본인이 직접 연주하는 것보다는 이게 더 정확하고 또 편리하니까 적극 활용하고 있고요. 하지만 디지털 음원을 듣고 배운 노래에서 아이들이 어떤 정을 느낄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재미있게 배워야 일상에서도  부를 텐데 그러질 않으니 학교를 나서면 더 이상 부르지 않게 되는 거예요.”
예전 음악시간은 어땠나요.
“제가 풍금으로 반주를 하며 한 마디씩 부르면 고 작은 녀석들이 유심히 듣고는 그대로 따라 부르곤 했어요. 어린아이들이지만 그러면서 가사를 음미하고 나름대로 감정도 싣게 되는 거죠. 그 모습이 꼭 어미 오리 꽁무니를 쫓아가는 아기 오리들마냥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어요. 한 소절씩 선생님 따라 배워야 제맛이 나지 않겠어요. 그냥 그 모습 자체가 예뻤어요. 제가 반주를 좀 틀리든, 아이들 음이 엇나가든 무슨 문제가 됐겠어요. 부르면서 즐거우면 그만이죠. 국어시간에도 시가 나오면 직접 곡을 붙여 외워보게도 하고, 산수를 가르치다가도 조는 아이들이 있으면 풍금 연주로 분위기를 띄웠죠.”

오 회장은 다음달 1일 송파여성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한국동요음악콩쿠르 준비에 한창이었다. 협회가 1970년 ‘새 노래 발표회’로 시작한 대회는 2000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며 반세기 넘게 명맥을 잇고 있다. 매년 연말에는 회원들이 만든 창작 동요집도 발표해 왔다. 오 회장도 팔순이 넘은 나이지만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피아노 앞에 앉으며 동요 작곡에 전념하고 있다. 지난해 동요집엔 창작 동요를 20곡이나 실었을 정도다.

초임 교사 시절부터 작곡하셨다고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노래를 좋아했어요. 국민학교 음악시간에 노래를 배우면서 ‘어떻게 이렇게 예쁜 곡을 썼을까’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대학 땐 밴드부에서 활동하기도 했죠. 첫 부임지가 충남 논산의 작은 학교였는데, 시골 아이들이 아는 노래는 교과서에 실린 곡이 전부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의 큰 서점에서 동요집을 사오고 광석에 철삿줄을 달아 일종의 라디오를 만들었어요. 온갖 잡음을 뚫고 나온 노래를 외워 아이들과 신나게 불렀죠. 그러다 ‘아이들이 부를 노래를 직접 만들어보자’ 싶어 작곡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내가 만든 동요가 아이들 목소리로 불리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 반 아이들만 새로운 동요를 부르고 다닌다며 다른 반 아이들이 엄청 부러워했죠(웃음).”

1964년 결성된 한국동요음악협회 역사는 우리나라 창작 동요의 발자취나 다름없다. 초대 회장은 ‘얼룩송아지’의 작곡가 손대업이다. 서울대 음대 출신인 그는 박목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고, 이후 이 노래는 1960년대 음악 교과서에 실리며 ‘국민 동요’가 됐다. 오 회장은 “손 선생님이 작곡을 좋아하는 교사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통신으로 곡을 주고받아 ‘한국동요작곡 통신교실’이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통신이라면 인터넷을 말하나요.
“아뇨. 인터넷은커녕 전화도 드물던 시절이거든요. 곡을 지어서 악보를 우편으로 보내면 서로 평을 해서 회신하는 식이었어요. 전국에 있는 누구라도 펜팔하듯 곡을 주고받았죠. 그러다 점점 정기 모임도 갖기 시작했어요. 이후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을 작곡한 한용희 선생님 등이 회장을 맡으며 협회를 키워나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5대 회장인데 벌써 20년째에요. 얼른 후배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현직 교사들의 참여가 예전 같지 않으니 쉽지 않네요.”
대회 심사위원은 거절하셨다면서요.
“KBS 창작동요대회에서 수상한 뒤 3년간 본선 심사위원장을 맡았어요. 그런데 전혀 동요 같지 않은 노래가 자꾸 본선에 올라오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 차라리 예선 심사에 참여하겠다고 했어요. 동요라고 할 수 없는 곡은 예선에서 걸러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예선에 300여 편이 들어왔는데 거의 대부분 그런 노래들이더라고요. 도저히 고를 게 없다 보니 그 후로는 심사를 보지 않게 됐어요.”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보시나요.
“지금도 즐겨 부르는 MBC 창작동요제 1회 대상곡인 ‘새싹들이다’는 24마디예요. 통상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동요가 16마디거든요. 한 곡 다 부르는 데 2~3분이면 족해요. 최근 창작동요대회에서 수상한 노래 모음집을 사봤는데 노래 길이가 68마디, 91마디 이렇더라고요. 68마디를 부르려면 10분은 족히 걸릴 거예요. 이런 곡이 수상하니 작곡가들도 그게 좋은 거다 싶어 길고 화려한 노래만 줄줄이 쓰는 거예요.”
2015년 제16회 한국동요음악콩쿠르에서 학생들이 동요를 부르고 있다. [사진 한국동요음악협회]

2015년 제16회 한국동요음악콩쿠르에서 학생들이 동요를 부르고 있다. [사진 한국동요음악협회]

오 회장은 “리듬이 단순해 부르기 쉬우면서도 가사가 예쁜 게 동요의 기본”이라며 “음도 아이가 부르기에 너무 높거나 낮지 않게 도에서 라 사이가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한용희 전 협회장이 “동요 가사는 문학 작품과 같다”고 말했듯이 가사 또한 어린이 심성에 맞아야 함은 물론이다.

리듬만 재밌으면 안돼, 가사가 좋아야

동요는 쉽고 단순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런 곡을 만드는 게 쉽진 않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가사가 예쁘면서 어법에도 맞아야 해요. 우리말을 배워가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잖아요. 예컨대 눈(目)은 단음이고 눈(雪)은 장음이니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는 가사를 붙이려면 박자도 길게 맞추는 게 좋아요. 가락선도 고려해야 합니다. ‘높은 하늘’ ‘자라나는 나무’처럼 상승을 의미하는 가사 선율은 상행 진행을 해야 맞고 ‘내려앉는 어둠’ 같은 가사는 하행 진행이 바람직해요. 이런 게 점점 간과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오 회장은 그러면서 “동요를 부르는 건 생애 최초로 예술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어린이의 말로, 어린이다운 노래를 부르는 경험을 통해 더 큰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어요. 손흥민 선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어린이 축구교실에서는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기본기를 닦는 데 집중한다고.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어릴 적에도 유행가는 있었거든요. 다만 어린이가 부를 노래가 아니니 따라 부르면 어른들에게 혼나곤 했죠. 지금은 어디 그런 일로 혼을 내나요.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사랑·이별 노래를 부르게 하고 ‘천재’라며 치켜세우는 프로그램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다시 동요를 즐겨 부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른들이 좋은 동요를 만들어줘야죠. 예쁘고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를요. 동요를 부를 기회도 최대한 많이 만들어줘야 해요. MBC 창작동요제는 2010년 폐지됐고 KBS 창작동요제만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인데 그마저도 참가자 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예요.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국영수 학원 가느라 예체능할 시간이 없다는데, 자라는 아이들에게 노래 부를 시간조차 주지 않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오 회장은 “지금도 ‘고향의 봄’ ‘과꽃’ 같은 동요를 부를 때면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 같다”며 “요즘 아이들에게도 어린 시절을 추억할 만한 노래 몇 곡은 만들어줘야 한다는 작은 책임감에 오늘도 피아노 앞에 앉는다”고 말했다. ‘잘되라고 나무라시던 마음 아파하시던 언제나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선생님 마음’. 오 회장이 1978년 작곡한 ‘선생님 마음’의 가사 일부다. 평생 동요를 부르고 지은 그에게 동요는 단순한 노래 그 이상이었다. 그 안에는 곱고 순수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어린이와 가족의 달, 5월이 간다. 그래도 동요는 계속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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