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은 왜 식전에 땅콩 줄까…알고보니 '뜻밖 역사' 있었다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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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집에 가면 식전에 나오는 땅콩. 소후닷컴

중국요리집에 가면 식전에 나오는 땅콩. 소후닷컴

중국의 음식점에서 요리를 주문하면 음식이 나오기 전 대부분 소금 뿌린 볶은 땅콩이나 삶은 땅콩을 한 접시 내준다. 우리나라 중국 레스토랑에서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식사 전 땅콩을 주는 것일까?

본격적으로 요리를 먹기 전 식욕을 돋우라는 식전 음식, 애피타이저일 수도 있고 요리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니 멀뚱멀뚱 앉아있는 대신 먼저 요기나 하라는 심심풀이 땅콩일 수도 있다. 이밖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데 어쨌든 식전 땅콩에는 나름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의미가 있다.

먼저 중국에서는 언제부터 요리를 먹기 전에 땅콩을 먹는 풍속이 생겼을까? 별게 다 궁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조상님들도 식전 땅콩 풍습이 특이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뜻밖에도 조선시대 문헌에서 중국의 땅콩 먹는 풍속을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 후반인 정조 무렵, 사신 일행으로 북경에 간 조선 선비들은 식사 때마다 식전 혹은 중간에 청나라 사람들이 땅콩 먹는 모습을 보며 낯선 식품과 풍속에 놀랐는지 여러 기록을 남겼다.

정조 2년(1778년) 서장관으로 북경에 갔던 실학자 이덕무는 문집인 『청장관전서』에서 식사 초대를 받아 갔다가 땅콩을 먹거나 선물로 받았다며 낯설고 신기한 '과일'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땅콩은 꽃이 떨어지면 그 흙속에서 줄기가 생겨나 묻히면서 결실을 맺는 특이한 과실이라며 먼 사막에는 양 뼈를 묻으면 땅 속에서 양이 나오는 곳도 있다고 하던데 땅콩이 바로 그런 이치인 것 같다고 신기해했다. 그래서 이름도 꽃이 떨어진 곳에서 생겨난 열매라는 뜻에서 낙화생(落花生)이 됐다는 것이다.

정조 23년(1799년)의 북경 기행일지인 『무오연행록』에도 식사 때 땅콩을 대접받았다는 기록이 보이고 『열하일기』로 유명한 박지원도 중국에 갔을 때 가는 곳마다 식사 때 땅콩 대접을 받았다며 모두 복건과 절강 지방에서 나는 것으로 들었다고 적었다.

이렇듯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18세기 후반, 청나라에서는 식전 애피타이저로 혹은 식사 중 술안주 등으로 땅콩을 먹는 풍습이 널리 퍼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조선의 사신 일행을 대접할 때의 풍경이었으니 나름 수준 있는 식사 자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왜 식전 땅콩을 먹는 문화가 생겼을까? 일단 식전 땅콩은 청나라 상류층의 잔치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배경은 중국에 땅콩이 처음 전해졌을 때는 워낙 특이하고 희귀했던 식품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땅콩을 다른 견과류와 마찬가지로 건강식품으로 여기며 청나라 귀족들이 땅콩을 먹으며 잔치를 시작했다.

브라질이 원산지인 땅콩은 포르투갈 상인들이 처음 세상에 퍼트렸다. 중국에는 명나라 초중반에 처음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에 지방 관청 기록인 현지(縣誌)등에 땅콩으로 보이는 작물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명말청초 문헌인 『물리소식』에 땅콩을 외국 콩(番豆)으로 낙화생(落花生)이라고 했는데 명나라 후반부터는 남부 연안 지방에서 땅콩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조선 사신들이 땅콩은 복건과 절강 등지에서 나온다고 전한 이유다.

뒤집어 말해 18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북경을 비롯한 화북지역에서는 아직 땅콩을 키우지 못했다. 그러니 멀리는 복건 가깝게는 절강 등지에서 땅콩을 육로로, 혹은 대운하를 이용해 수로로 북경까지 운반했다. 그렇기에 황제가 있는 북경에서는 땅콩이 여전히 특별하고 소중한 식품이었다.

그런만큼 땅콩은 명절이나 잔치 같은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었다. 예컨대 청나라 때 소설인 『홍루몽』에는 섣달 그믐날에 먹는 팔보죽(八寶粥)을 끓일 때 땅콩을 넣는다고 나온다. 홍루몽은 북경의 귀족 집안의 생활이 묘사된 소설인 만큼 땅콩 넣은 팔보죽이 부잣집 명절 음식이었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덧붙여 땅콩은 잔치상에 놓는 진귀한 식품(筵席珍貴之物)으로 여겨 건륭황제의 연회상에도 나왔다고 한다. 잔치가 시작되기 전 남방에서 온 특이한 식품, 땅콩으로 잔치를 시작한 듯싶다.

땅콩을 특별하게 여겼던 이유는 외국에서 전해진 희귀한 작물이었던 것 이외에 또 다른 배경도 있다. 중국은 고대로부터 서역에서 전해진 견과를 장수식품으로 여기며 환상을 가졌는데 땅콩도 여기에 해당된다. 땅콩의 옛 명칭을 보면 알 수 있으며 먹으면 만년을 사는 열매라고 만수과(萬壽果), 장수한다는 장생과(長生果), 인삼에 버금간다고 해서 인삼 콩(人蔘豆)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렇기에 땅콩이 널리 퍼지면서 예전에는 특별한 날에나 맛볼 수 있었던 땅콩을 먹으며 식욕도 북돋고 장수를 축원했다.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며 중국집에서 무심코 먹는 심심풀이 땅콩에 이런 뜻밖의 역사가 있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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