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어 오르던 국내 가계 빚이 1년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장기간 이어진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둔화에 주택담보대출 증가 속도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한국은행은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이 1882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4분기(1885조4000억원)보다 2조5000억원 줄었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ㆍ보험사 등 금융사(공적 금융기관과 대부업체 포함)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산용 금액(판매신용)까지 포함한 ‘포괄적 가계 부채’를 의미한다.
가계 빚이 줄어든 데는 올해 들어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이 축소된 영향이 크다. 가계신용 가운데 카드대금(판매신용)을 제외한 1분기 가계대출 잔액은 1767조원으로 석 달 전보다 2000억원 줄었다. 이중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같은 기간 12조4000억원 늘어난 1076조7000억원으로 전 분기 증가 폭(15조2000억원)보다둔화했다.
서정석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금융통계팀장은 “정책지원대출 공급이 축소되고, 지난해 연말 전후로 나타난 주택 거래량 감소 추세가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 잔액도 690조4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2조6000억원 줄었다. 감소 폭도 전 분기(-9조7000억원)보다 키웠다. 1분기에는 상여금 등 여유자금을 활용해 신용대출이 대규모로 상환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신용카드 등 판매신용 잔액은 115조8000억원으로 2조3000억원 감소했다. 서 팀장은 “1분기 계절적 요인으로 신용카드 이용 규모가 줄면서 여신전문회사 중심으로 판매신용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가계 빚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소폭 떨어졌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8.9%로 지난해 4분기(100.1%)에 비해 1.2%포인트 낮아졌다. 2020년 3분기 100% 선을 넘은 뒤 3년 반 만에 90%대로 내려온 것이다. 한은은 이 비율이 80%를 넘기면 경제 성장이나 금융 안정을 장기적으로 제약한다고 보고 있는데, 일차적인 목표는 이룬 셈이다.
다만 가계 빚 둔화세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향후 기준금리 인하 기대와 주택시장 회복 가능성에 따라 가계대출 수요가 다시 커질 수 있어서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전 달보다 5조1000억원 늘어나, 감소세로 전환한 지 한 달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1분기 전국 주택 거래량(13만9000호)도 지난해 4분기(13만1000호)와 비교하면 소폭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