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당론 따르라" 썼다 지운 김근태 본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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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1일 확대간부회의에 앞서 발언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김 의장은 “당이 최종적인 결론을 내면 대통령께서는 수석당원으로서 그 결론에 따르면 된다”고 돼 있는 부분을 “당이 토론을 통해 최종적인 결론을 내면 당원은 그 결론을 존중해야 한다”고 표현을 완화했다.[연합뉴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지도부 간의 갈등이 정면 대결로 치닫고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1일 오전 '신당은 지역당으로 회귀하려는 것'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공개 비판했다. 그러자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오후에 김 의장을 맞비판했다. 당.청 갈등은 치유할 수 있는 단계를 이미 지났다.

◆ "대통령 발언은 모욕"=김 의장은 작심했다. 확대간부회의가 열리자 그는 "통합 신당을 지역당으로 비난하는 것은 제2의 대연정 발언"이라고 했다. "대연정을 추진하며 '한나라당이 선거법 개정에 동의하면 권력을 통째로 넘겨도 좋다'는 발언이 국민에게 모욕감을 주고 지지층을 와해시킨 일을 기억해야 한다"고도 했다. 특히 "통합 신당 논의는 참여정부를 출범시킨 모든 평화 세력을 재결집하는 것"이라며 "이런 노력을 지역당 회귀로 규정하는 건 다시 모욕감을 주는 것으로 유감스럽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대통령을 향해 꺼내기 어려운 화법이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 의장은 노 대통령이 수석 당원임을 겨냥해 "당이 나갈 길은 당이 정할 것"이라며 "당이 토론을 통해 최종 결론을 내면 당원은 결론을 존중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김 의장 손에 들려 있는 발언자료 원본은 더 강했었다. '수석 당원~따르면 된다'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 시작 전 김 의장이 '당원~존중해야 한다'로 바꿨다고 한다. 김 의장 측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신당=지역주의' 발언을 보며 계급장 떼고 논쟁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 "김 의장 발언은 유감"=이병완 비서실장은 오후에 청와대 기자실로 내려와 "김근태 열린우리당 비대위 의장의 발언은 상당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김 의장을 굳이 '비대위(비상대책위) 의장'이라고 부른 데서 청와대 측의 불만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 실장은 "대통령은 통합 신당 문제가 열린우리당의 법적.역사적.정책적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는 과정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민주당과의 통합은 지역 구도 회귀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개별적인 정치 입지를 위해 대통령과의 구시대적 차별화 전략이 아닌가 의심받을 발언이 쏟아져 안타깝다"며 "개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대통령을 흔들고 차별화하는 전략은 정치사에서 성공한 적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당의 친노(親盧) 의원들도 가세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참모 출신인 이광재 의원은 "김 의장의 지도력에 한계가 왔고 책임져야 한다"며 김 의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이 의원은 "김 의장은 최장수 당 의장 중 한 명으로 당의 미래에 대한 전권을 가졌음에도 지지도를 반 토막 내 버렸다"고도 했다.

◆ 당 중진 수습 불발 해프닝=김원기.문희상.염동연 의원 등 당 중진들은 별도 모임을 열고 당.청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노 대통령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김 의장을 배제하고 친노 의원들만 초청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자 청와대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

박승희.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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