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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철학자는 왜 풀 뜯는 소들이 부럽고도 불쌍했을까[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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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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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일각돌고래라면
저스틴 그레그 지음
김아림 옮김
타인의 사유

니체는 고통받는 영혼이었다. 어려서는 종종 두통을 겪었고 철학자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던 시기에도 우울증, 환각,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쇠약한 정신 상태는 1889년 무너져 내렸다. 니체가 이탈리아 도시 토리노의 광장에서 마부에게 채찍질 당하는 말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말의 목에 팔을 감은 채 쓰러진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그는 정신병원을 거쳐 가족의 돌봄을 받다 세상을 떠났다.

니체는 풀 뜯는 소들을 부러워했다. 뛰어다니고, 먹고, 쉬고, 다시 뛰어다닐 뿐 불안이나 우울을 느끼지 않는다면서다. 마냥 부러워한 것만은 아니다. 이 책 『니체가 일각돌고래라면』은 "니체는 자신이 소처럼 멍청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소들이 너무 멍청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고하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겼다"고 전한다. 만약 니체가 소였다면 더 좋은 삶을 살았을까. 혹은 지은이가 좋아하는 해양 포유류인 일각돌고래였다면.

봄을 맞아 초지로 방목된 소들이 풀을 뜬는 모습. 2006년 충남 서산시 운산면 농협 가축개량사업소의 소들을 촬영한 사진이다. [중앙포트]

봄을 맞아 초지로 방목된 소들이 풀을 뜬는 모습. 2006년 충남 서산시 운산면 농협 가축개량사업소의 소들을 촬영한 사진이다. [중앙포트]

동물을 연구해온 지은이가 이런 가정법을 내세운 건 인간의 지능이 우월한 것, 혹은 좋은 것이란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인간의 복잡한 인지적 능력을 인과적 추론, 언어를 통한 소통, 죽음에 대한 인식, 미래에 자신을 투영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능력 등으로 꼽으며 그 양면성을 짚어나간다.

지은이에 따르면 인간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원인을 찾아내는 '왜? 전문가'다. 덕분에 과학을 비롯해 온갖 업적을 이뤄냈지만, 진화의 관점에선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인간 아닌 많은 동물이 '왜?' 없이도 잘 살아왔고, 살고 있다.

1882년 사진작가 구스타프 슐체가 촬영한 니체의 모습. 공개 도메인에 속하는 사진이다.

1882년 사진작가 구스타프 슐체가 촬영한 니체의 모습. 공개 도메인에 속하는 사진이다.

지은이는 인간이 인과관계를 찾다가 종종 엉터리 해답, 때로는 유해한 해답을 찾아낸다고 지적한다. 뱀에 물렸을 때 상처에 수탉의 엉덩이를 문지르는 '의학적' 치료법은 과거 유럽에 널리 퍼져 있었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의 작용이 밝혀지기 전까지 20세기 의학은 위궤양의 원인을 스트레스라고 믿었다고 예를 든다. 인간의 외형적 차이의 원인에 대한 탐구는 '과학적' 인종 차별주의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은이는 인간의 인과적 추론과 인간 아닌 동물이 연관성 학습을 통해 하는 행동이, 인간의 거짓말과 동물의 속임수가, 인간의 도덕적 추론과 동물 사회에도 존재하는 암묵적 규범이 각각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다. 흥미로운 각종 연구와 실험 결과는 물론이고 주식투자와 사기를 비롯한 사건과 사례를 매끄럽게 펼쳐내 읽는 맛을 더한다.

죽은 새끼를 여러 날 데리고 다닌 어느 범고래의 행동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그 슬픔과 애도를 짐작하게 한 일도 나온다. 그렇다고 지은이의 어린 딸이 어느 날 그랬듯,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거란 걸 알고 불안에 압도당하는 일을 동물도 겪는 것 같지는 않다. 지은이는 되묻는다. 죽음을 아는 것이 좋은 일일까.

인간은 아는 것이 많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 등은 사실 대개의 사람들에게 별 쓸모없는 지식이다. 저자는 이를 포함해 우리가 아는 수많은 사실들이 문제에 직면해 무한한 수의 해결책을 상상하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정신적 시간 여행 능력도 있다. 동물도 겨울에 대비해 곳곳에 먹이를 숨겨놓고 이를 모두 기억하는 모습이 관찰되는데, 저자는 인간의 시간 인지와 다른 점을 지적한다. 겨울을 안 겪어본 새끼도 같은 행동을 하는 점에서 본능인 셈이다.

이달초 브라질에서 폭우로 거리가 물에 잠긴 모습. 급격한 기상 변화는 세계 곳곳에서 관측된다.[AP=연합뉴스]

이달초 브라질에서 폭우로 거리가 물에 잠긴 모습. 급격한 기상 변화는 세계 곳곳에서 관측된다.[AP=연합뉴스]

지은이는 미래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근시안적이란 점도 지적한다. 오늘 밤 늦게까지 놀면 일찍부터 일을 해야 하는 내일이 힘들 테지만, 내일의 고통을 남의 일인 양 여기고 놀아버린 자신의 행동도 그 예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에도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거나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도 마찬가지. 핵무기에서 보듯 인간은 복잡한 인지적 능력을 발휘해 자신의 종을 절멸시킬 수 있는 수단까지 만들었다.

지은이의 말처럼 진화의 관점에서 종의 안정적 유지와 번성을 성공이라고 본다면, 인간의 지능은 성공은커녕 지은이의 말마따나 지극히 어리석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지은이는 동물에게도 의식이 있다고 본다. 인간을 예외적인 존재,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시각을 여러모로 되짚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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